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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77] 복위 2(사무엘하 20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77] 복위 2(사무엘하 20장)

En Hakkore 2024. 3. 6. 11:05

요압을 제거하기 위한 시도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삼하 20:4).

비록 유다 사람들이 왕에게 반역한 열 지파 사람들의 악한 예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이 구절에 비추어 볼 때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더 이상 다윗과 함께 머물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 상황을 고려할 때, 그들은 자기들의 주군의 체계가 심각하게 위협 받았을 때 그들 자신의 안락과 안전을 우선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왕의 승리에 동참하는 일에는 앞장섰으나 그를 위한 싸움에서는 뒤로 물러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만큼이나 충성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값싸고 쉬운 충성일 경우에 한다. 많은 이들이 자기들이 그리스도와 가까운 것을 자랑하지만 그분을 위해 위험을 감내하는 것은 아주 싫어한다"(Matthew Henry).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주님의 백성들이 모든 동물들 중 가장 소심한 것들 중 하나인 "양"으로 불리는 것이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

이것은 세바의 반역 앞에서 다윗이 느꼈던 불안과 그가 그 반역을 제압하기 위해 강력하고도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했음을 보여 준다.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아마사가 다윗과 맞섰던 압살롬 군대의 사령관이었다는 점이다(삼하 17:25).

그는 다윗이 요압을 대신해 자기 군대의 사령관으로 삼으려 했던 인물이었다(19:13). 그리고 세바의 반역은 그의 그런 계획을 이행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아마사가 이스라엘 사람이었음에도 반역자들에게 합류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이미 왕의 계획에 대해 통치를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높이고 더 큰 순사적 명예를 얻을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우리가 곧 알게 되겠지만, 그는 이 새로운 지위를 받아들이면서 그 자신의 사형집행 연장에서 명을 했을 뿐이다. 이 세상의 명예란 그렇게 불안하다.

다윗의 선택이 현명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생각이 부족했을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아마사는 압살롬의 휘하에서 유력한 지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요압이 성공적으로 지휘했던 사람들이 최근까지 자기들의 왕의 적이었던 자에게 순종할 마음을 품으리라고 기대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아마사가 왕의 명령을 이행하는 데 지체하거나 성공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거의 틀림없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기 때문이다.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모으러 가더니 왕이 정한 기일에 지체된지라"(삼하 20:5).

토마스 스콧(Thomas Scortt)이 말하듯이, "유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왕에 관해 논쟁하는 데는 열심이었으니, 아마사 휘하에서 싸우는 데서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이것은 아마사에게 엄중한 경고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는 오만한 마음 때문에 그 경고에 주의하지 않았다.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삼하 20:6).

세바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굉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미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세바가 그의 계획을 성숙시킬 시간을 얻는다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리라고 생각할 충분할 이유를 갖고 있었다.

그가 아마사에게 내린 명령은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계획이 발아 단계에 있을 때 그 싹을 잘라냄으로써 또한 그들에게 강력한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반역자들을 좌절시키기로 결심했음을 보여 준다.

아마사가 즉시 군대를 소집하는 일에 실패한 것 때문에 안달이 난 다윗은 이제 아비새에게 정규군을 통솔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그가 요압을 좌천시키기로 결심했음을 보여 준다.

"요압을 따르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삼하 20:7).

나는 이것이 앞 절에 나오는 "네 주의 부하들" 이라는 말이 전에 요압이 지휘했던 경험 많은 전사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으로 여긴다. 이 경우에 다윗은, 비록 요압을 활용할 의도는 없었지만, 기꺼이 그가 훈련시켰던 사람들을 활용하고자 했다. 아비새는 검증된 강력한 장수였으며 요압의 형제였다.

다윗의 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된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하나님이 그것을 무위로 돌리실 수 있다는 사실만 한 번 더 확인하는 셈이 되고 말았다. 종종 위대한 사람들-심지어 왕들까지-도 그들이 세운 계획이 뒤틀리는 경험을 하고 자기들이 왕 중의 왕이신 분의 뜻에 복속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상황이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주님께서 그분의 무한한 지혜로 우리를 다스리시니 말이다.👍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삼하 20:8a).

이곳은 다윗의 부대들이 회합하기로 약속했던 장소로 보인다. 이제 아마사는 자기가 소집한 사람들을 이끌고 도착해, 즉시 그 군대의 사령관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의 군사적 영광의 순간은 지극히 짧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야망의 정점에 서자마자 잔혹하게 살해되어 자신의 피속에서 뒹굴어야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의 명예와 승진은 헛되다. 그것들은 너무 많은 질투와 적의를 초래하기에 우리의 불확실한 삶에 그 어떤 추가적인 안정도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명예만을 갈망하게 되기를!"(Thomas Scott).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