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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78] 어그러진 계획(사무엘하 20장) 본문
앞에서 우리는 요압이 거칠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정신의 소유자이며 기본적으로 사악하고 파렴치한 자였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일단 다윗이 그의 수중에 들어오자-다윗은 우리아를 죽이는 일을 은밀하게 그에게 맡김으로써 그런 상태에 떨어졌다-그는 모든 일을 점점 더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왕의 명령을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이행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극도로 오만하고 무자비한 사람이었던 요압은 자신을 가로막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모든 생래적 감정을 결여하고 하나님도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는 자기의 길을 가로막는 자를 제거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오만함, 반역적 상황, 그리고 잔인성은 이제 우리가 살피려고 하는 사건을 통해 무서울 만큼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이 사건을 불쾌한 것으로 치부하고 지나갈지 모르나, 그것은 엄연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 우리는 다윗이 요압에게서 군대의 사령관 자리를 빼앗음으로써 그의 권력을 박탈하기 위한 결정적인 시도를 했던 것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러나 다윗의 계획은 성경에 기록된 가장 사악한 행위들 중 하나 때문에 어그러지고 말았다.
요압은 새로 임명된 사령관에게 인사하는 체하면서 그의 배를 칼로 찔렀다. 그런 잔학한 행위는 생각이 많은 이들을 동요하게 만들고 어째서 하나님이 그런 포악한 행위가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참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갖도 있는 어두운 신비들 중 하나다. 어째서 주님은 그토록 사악한 괴물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가도록 허락하시는 것일까? 신앙을 가진 자는 그분이 어떤 충분한 이유를 갖고 계실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종종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실지라도"(욥 33:13), 그럼에도 그분의 말씀은 인간사에 대한 그분의 통치적 처리를 규제하는 일반 원칙을 얼마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의로운 섭리
우리가 하나님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롬 8:28)을 인식한다면,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음이 될 것이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그 자체로만 살펴본다면, 그것들은 아주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을 그것들보다 앞선 사건이나 그로 인한 결과에 비추어 살필 수 있다면, 그것들의 의미가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삶의 독립된 파편들은 의미가 없고, 당혹스럽고, 놀랍다. 그러나 그것들을 한데 모아 보라. 그러면 그것들은 어떤 의도와 목적을 드러낼 것이다. 현재의 많은 사건들이 과거에 그것들보다 앞선 사건들 안에서 설명을 얻는다.🌱
또한 현재의 여러 가지 혼란들 역시 미래에 있을 결과에 비추어 본다면 이해할만한 것이 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 13:7). 만약 이런 원리들을 마음에 새긴다면, 우리는 놀라운 일들 앞에서 당혹감을 덜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앞에 있는 사건이 그것에 대한 적절한 예가 될 수 있다. 아마사에 대한 잔혹한 살해 사건은 그 자체로만 본다면 놀랄 만하다. 어째서 하나님은 그가 그토록 끔찍한 최후를 맞게 하셨는가?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건들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또 그것을 인과응보라는 냉혹하지만 의로운 원리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서는 요압을 이용해 다윗의 계획을 어그러뜨리셔야 할 충분한 이유를 갖고 계셨다는 것과, 또 그런 죽음을 맞은 아마사가 그에게 합당한 것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혐오스러운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유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 비극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신 충분한 이유를 갖고 계시다면, 우리는 그분이 오늘날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혼란스럽고 소름끼치게 느껴지는 일들을 통해 그분 자신의 지혜로운 목적을 수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다 잘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야곱으로 하여금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운명에 관해 그토록 비열한 거짓 보고를 받게 하신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창 37:31-35). 그는 자기가 자기 아버지 이삭을 속이면서 뿌렸던 씨앗의 열매를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창 27).
하나님이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히브리 사람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다루게 하셨던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출 1, 5). 그들은 히브리 사람들이 그들을 더럽혔던 이방의 가증한 것들을 버리라는 주님의 명령에 유의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던 것에 대한 징벌의 도구였다(겔 20:7-8).
하나님이 도엑으로 하여금 팔십오 명이나 되는 제사장 가족들을 잔혹하게 죽이게 하신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삼하 22:18). 그것은 그분이 엘리의 집안에 대해 선포하셨던 엄중한 심판의 시행이었다(삼상 2:31-36; 3:12-16).
하나님이 이 기독교 시대에 유대인들이 다른 그 어느 민족들보다 더 많은 증오와 박해를 겪게 하시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의 죄책이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에게 있는 것이다(마 27:25).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 3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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