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 위로 본문
"너희는 위로하라,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0:1)
명령이 두 번 반복된 이유를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때로는 너무도 마음이 상해 받기를 거절하는 영혼도 있어서, 위로를 반복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시 77:2)
둘째, 설교자들에게 이 의무를 강조하여 그들이 위로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이 기뻐하며 살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시는지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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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상한 마음을 싸매고 상처에 길르앗 향유를 발라주셔서 깨끗케 하시기를...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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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는 마치 방주 안에 있던 노아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다. 위로 하늘이 어두컴컴하고 아래로 바다가 넘실거려도, 물 한 방울 방주 안에 새어 들어오지 못하며 바람 한 점 그 영혼의 평안을 위협하지 못한다. 믿는 자는 마치 이삭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을 때 형의 옷에 몸을 숨긴 야곱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다. 또 믿는 자는 마치 피의 복수자에게 쫓길 때 도피성으로 피신한 죄인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다."(윈슬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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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뜻에 따라 부름받은 자들의 유익을 위해 협력한다는 사실을 안다."(롬 8:28)
모든 것이 유익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오직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일만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허락한 일이 아니라면 사탄도 우리 머리카락 한 올조차 건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것도 그 자체로는 선하거나 유익이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 삶에 우연이나 사고로 발생하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 결국에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모든 것은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택하신 자들에게 복이 되도록 작용합니다. 심지어 고통이나 슬픔, 상실조차 모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사용합니다. (Arthur W. Pink. 위로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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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하늘의 소망이기에 늘 땅의 본성에 의해 방해받는다. 우리 영혼이 헛된 육신의 족쇄에서 벗어나 빛과 자유의 나라에 가기 전까지 이 방해는 계속될 것이다"(토마스 차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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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鍊鍛, test, refine)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너희가 크게 기뻐하노라. 비록 지금은 잠시 필요에 따라 여러 시험(또는 연단)을 거치며 근심하나, 이는 너희가 믿음의 연단을 받아 불로 연단해도 결국 없어질 금보다도 귀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칭찬과 명예와 영광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벧전 1:6-7)
이 구절을 통해 세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에게는 믿음의 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이 믿음의 연단은 금보다도 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귀하며,(시116:15) 우리도 결국에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
셋째, 지금 받은 연단에는 미래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연단을 온전히 창고 견디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큰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단련시키는 불같은 연단을 이상한 일처럼 여기지 말라. 이것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오히려 기뻐하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너희도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이다."(벧전 4:12~12)
■유업(遺業, inheritance)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게 하셔서 너희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망을 깨닫고, 또 성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유업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알게 되도록 기도한다."(엡 1:17~18)
하나님의 백성을 몫이나 특별한 소유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유업이라 표현한 것에 유의하십시오. 유업이란 표현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유업은 죽음을 통해 얻어집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독생자의 죽음을 통해 유업을 얻으셨습니다.
둘째, 유업은 영속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그와 그의 상속자에게 영원히'란 표현이 자주 사용됩니다.
셋째, 유업은 소유하고 사용하고 누리기 위한 재산입니다.
(Arthur W. Pink 위로 p110)
■애통(哀痛, Lamentation)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 5:4)
인간의 본성은 애통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 영혼은 본능적으로 슬픔과 고통을 피하려 합니다. 우리는 자연스레 즐겁고 활기찬 사회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않은 자에게는 이 말씀이 이상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는 마치 음악 소리처럼 감미롭게 들릴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만 이 역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깊이 묵상할수록 '이 사람처럼 말했던 자는 이제껏 없었다'(요 7:46)라고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애통한다고 모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망을 가져오는 세상의 슬픔"(고후 7:10)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직 영적으로 애통하는 자에게만 위로를 약속하셨습니다. 진정으로 복이 있는 애통함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선하심을 깨달은 결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의 악함과 타락한 본성과 심각한 죄악을 자각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슬퍼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애통함은 우리 영혼의 궁핍함을 절실히 느끼며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은 죄악을 슬퍼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며 의존하던 윤리 도덕과 자기 의를 슬퍼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반항하고 그의 뜻을 거역했음을 슬퍼하는 것이다. 이런 애통함은 가난한 심령과 늘 함께 나타난다."(피어슨) Arthur W. Pink 위로 p130
■하나님의 의(義, God's righteousness)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마 5:6)
팔복의 처음 세 가지는 성령님에 의해 거듭난 자가 경험하는 심령의 변화를 묘사합니다.
첫째, 거듭난 자는 자신의 헛됨과 공허함을 깨닫고 궁핍함을 느낍니다.
둘째, 자신의 죄악되고 타락한 본성을 자각하며 슬퍼합니다.
셋째, 스스로 의롭게 여기거나 행위로 공로를 쌓으려던 것을 그만두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춥니다.
넷째, 거듭난 영혼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의로움을 갈망하면서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늘아, 너는 위로부터 내려와 공중에서 의가 쏟아지게 하라. 땅은 열려서 구원을 맺고 의도 함게 싹트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것을 창조하였다."(사 45:8)
■하나님의 의 2(義, God's righteousness)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우리 영혼이 그만큼 강렬하게 의를 갈망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세 단계에 걸쳐 우리를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하십니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기준을 깨닫도록 하십니다. 절대로 낮춰지지 않은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을 보여주시며, "너희 의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너희는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 5:20)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하십니다.
둘째, 우리가 처한 궁핍한 상황과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능력이 전혀 없음을 깨닫고 두려워 떨며 좌절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어서 우리는 탄식하며 애통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셋째, 성령님은 이제 마음속 깊이 '굶주림과 목마름'을 느끼게 하시며, 자신의 죄악을 절실히 깨달은 우리는 안식과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간절히 찾습니다. 그래서 우리 눈은 '우리의 의가 되신'(렘 23:6) 그리스도께 향하게 됩니다.
Arthur W. Pink 위로 p143
■ 정결 1(淨潔, cleanness)
"마음이 정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 5:8)
이 구절에서 정결한 마음은 다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처음 회심할 때 얻게 되는 새로운 마음 그 자체
2)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성품
두 해석 모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 구절이 팔복에서 비교적 뒤쪽에 나온 점을 고려하면, 그리스도께서 복되다 하신 정결한 마음은 우리가 거듭난 후에 뒤따르는 내적인 씻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에초에 거듭나지 않은 자에게는 마음의 정결함이 전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스도께서 이 구절을 통해 말씀하신 내용은 '중생' 그 자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시편에 "보소서, 주님은 내면의 진실함을 원하시며 제게 숨은 곳의 지혜를 알려주십니다"(시 51:6)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표면적인 개혁에 대부분 노력을 쏟는 반면, 이 말씀은 내면의 상태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은 온통 행위 구원을 추구하는 '손으로 믿는 종교'와 정통 교리에만 안주하려는 '머리로 믿는 종교'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음, 곧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살펴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보시는 이유는 주님께서 자기 소유된 백성에게 '새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마음은 '정결한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받은 사람은 진실로 '복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Arthur W. Pink 위로 p152
■ 정결 2(淨潔, cleanness)
"마음이 정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 5:8).
정결한 마음은 거듭날 때 받는 새로운 마음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성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선 '거듭남의 씻김'(딛 3:5)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땅의 것이 아닌 하늘에 것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믿음에 의한 마음의 정화'(행 15:9)라고도 합니다.
또한, '우리 마음에 피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에서 벗어나게'(히 10:22) 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져 하나님과 화평케 된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양심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신 마음의 정결함은 이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정결함이란 오염되지 않고 한결같으며 신실하고 진실한 마음을 뜻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지닌 특별한 성품으로 경건하고 단순한 마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의 반대는 교묘하고 이중적인 마음입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악의뿐 아니라 속임이나 위선도 멀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말과 행실만 정결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욕망, 동기, 의도 또한 순수해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점검해보아야 할 사항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에 것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까? 동기는 순수합니까? 교회에 출석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즐겁게 교제를 나누기 위합입니까?
Arthur W. Pink 위로 p154
■ 정결 3(淨潔, cleanness)
"마음이 정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 5:8)
마음이 정결한 자는 영적인 분별력과 이해력이 생겨 하나님의 성품과 위대함을 올바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눈이 바르면 온몸이 환합니다.'(마 6:22) 마음을 정결케 한 성도들은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과 인자하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마음이 정결한 자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도 나누게 됩니다. 마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관계처럼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그분의 뜻과 생각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마음이 정결한 자는 이런 식으로 현재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본다' 그리고 장래에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고 더 친밀한 관계가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이전 시대에 비하면 '주님의 영광을 대면해서 보지만', 다가올 시대에 비하면 '그저 '희미한 거울에 비춰'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누릴 뿐이다. 하지만 '부분적인 것은 사라지고 완전한 것이 도래할 것이다. 그때는 얼굴을 마주하여 보며 주께서 우리를 아시는 것처럼 우리도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고전 13:9-12) 또, '의로움 속에 주의 얼굴을 보며, 깨어날 때 주의 형상으로 만족할 것이다.'(시 17:15).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마음이 정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존 브라운)
Arthur W. Pink 위로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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