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교회 본문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바른 말씀과 기도가 긴밀하게 결합되어야 한다. 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과 뜻을 밝히 그러내는 말씀을 통해 교인들 안에 그 뜻을 구하는 기도의 불길이 촉발되어야 한다.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교인들의 마음에 비쳐 그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형상을 앙망하고 사모하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교인들이 설교를 통하여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 바라보는 형상으로 점차 변화되듯 기도도 마찬가지다. 기도 속에서 그들 마음에 심겨진 그리스도의 영광의 말씀을 바라봄으로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런 기도가 회복되기 위해서 교회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더욱 풍성히 거하여 그리스도의 탁월한 영광과 아름다우심이 밝히 증거되어야 한다.
잘못된 기도는 교인들을 성화되게 하기보다 세속화하게 한다.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열렬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욕심이 충만해도 열심일 수 있다. 기복 신앙을 가진 이들이 세상에서 잘되고 형통하고 복받기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가. 이런 기도가 그들을 더 탐욕스러운 신앙인들이 되게 한다.
처음부터 순수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순수하지 못한 기도는 기도로만 순수해질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세속적인 것을 구하다가 점차 기도의 내용과 추구하는 바가 변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복적인 기도가 굳어지면 평생 그런 기도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교회가 세속화된 이유는 말씀과 함께 기도까지도 세상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 데 있다. 기도가 성화의 강력한 방편이 되어야 하는데, 세상 욕심을 채우려는 저열한 동인에서 유발되는 세속화의 첨병 노릇을 한 것이다.
기도가 삼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번영과 교회 성장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동원되었다. 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는 삼위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목적과 뜻을 이루는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새로운 성전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소원과 거룩한 갈망이 가득해야 할 성령의 전인 교회에 성령을 대적하는 육신의 욕망과 자본주의 시장의 가치관이 가득할 때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장사치의 소굴이 되고 만다.
오늘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간절한 소원보다는 신앙의 명분으로 포장된 종교적인 장사꾼들의 탐심이 가득하니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주님의 혹독한 책망을 면키 힘들 것이다. 기도하는 성전을 세상 탐심이 가득한 사기꾼들의 소굴로 더럽힐 때 그 성전을 멸하신다는 주님의 엄중한 경고를 한국 교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 교회는 과거 주님이 성전을 정화했듯 새로운 성전인 교회와 개인 신자 안에 가득한 시장의 가치관, 장사치들의 속셈과 욕심을 모두 몰아내고 성령의 거룩한 소원을 따라 간절히 기도하는 집으로 거듭나야 한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편 141:2)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 p96(박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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