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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11] 압살롬3(사무엘하 14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11] 압살롬3(사무엘하 14장)

En Hakkore 2024. 3. 1. 11:32

다윗이 요압에게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명령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여러분 중 어떤 이들은 이것을 성급한 판단으로 여기고 다음과 같이 말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著者)에게는 자식이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에게 자식이 있다면,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상황을 좀더 잘 이해했을 것이다. 다윗은 그의 엇나가는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한 것 아니겠는가? 확실히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생래적 애정조차 없는 자들이 되기를 원치 않으실 것이다."

아, 사랑하는이여, 주님의 요구는 드높고 포괄적일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하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가 좁은 길을 걷는 것을 방해할 경우 우리의 오른쪽 눈을 빼버리고 오른쪽 손을 잘라내야 한다(마 5:29-30).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희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만약 하나님이 주시는 초자연적이고 충분한 은혜가 없다면, 우리 중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정도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눅 14:26).

그러므로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라"(28절)로 명령하셨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이의 주님이 되시거나, 아니면 전혀 주님이 되실 수 없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의 보좌를 요구하신다. 그리고 다른 모든 관심과 성향들은 그분의 주권적 의지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아, 그러나 오늘날 그분의 요구들은 거의 강조되지 않는다! 그분의 기준은 너무나 우습게 여겨지고 있다! 그분의 복음은 싸구려가 되고 말았다! 감상적인 정념이 그분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많은 이들 안에서 거룩한 원리들을 몰아내고 있다! 미약하게라도 하나님의 요구를 내세우는 자들은 무정하거나 까다로운 자들로 정죄되고 있다!

자식 사랑과 하나님의 명령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생래적 애정을 결여한 냉정한 금욕주의자가 되라는 요구를 받고 있지 않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우리 마음에 임하는 은혜는 우리를 완고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인간적인 정념이 아니라 영적 순결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큰소리로 아멘!)🤞

그는 생래적 애정 때문에 무법을 방조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성경의 명령으로 그런 애정을 다스려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동료 신자의 죽음 앞에서 슬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말라"(살전 4:13)는 금지 명령을 받고 있다.

또 우리는 "과도한 애정"(inordinate affection, 골 3:5, KJV-역주), 즉 무법적이고 터무니없는 애정을 "죽이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더 나아가 때로 우리는,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본성의 갈망을 유보하고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과 인간적인 정념에 굴복해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럴 경우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자아(거듭나지 않은 자연인)를 거부해야 한다.

가장 낮은 수준의 예를 들어 보자.

소위 "사랑"이라고 잘못 불리는 감정 때문에 자식들의 불순종과 반항을 엄격하게 다루지 못하는 부모들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은 자라나서 그들 자신의 죄악에 대해 눈을 감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게으른 젊은이들이 그들의 모든 변덕을 받아 주며 맹목적으로 그들을 사랑했던 부모들 때문에 쓸모없는 부랑자가 되고 마는가! 얼마나 많은 경박한 딸들이 그들에게 "유쾌한 시간을 허락해 준다"는 구실하에 그들을 방치했던 그들의 부모들 때문에 거리의 여자가 되어 삶을 마치는가!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이라도 자신의 애정을 자신의 이성을 통해 제어하고, 자신의 마음(애정)이 자신의 머리(이성)를 피해 달아나지 못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보다 훨씬 더 높고 거룩한 원리들에 의해 제어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들의 본성의 요구들을 하나님의 영광에 복속시켜야 한다.🤞

다윗이 요압에게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명령했을 때, 그는 여호와의 영광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생래적 애정의 명령을 따라 행동했다. 요압은 다윗의 약점을 이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드고아의 여인을 통해 자신의 계획을 성취한 것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 여인은 다윗의 정념을 잘 이용했고, 다윗은 서둘러 그녀가 말한 죄에 대한 우호적인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이어서 그 여인은 다윗을 설득해 그에게 반역했던 아들 압살롬의 지위를 회복시키게 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 속에는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의 법-그것을 암논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크게 요구하고 있었다-을 무시하는 것을 정당화해 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하나님은 압살롬의 지위를 회복시키라는 그 어떤 명령도 주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일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따르지 않았다. 곧 살펴보겠지만, 다윗은 그 어리석은 연민 때문에 아주 큰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성경에 그 일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되기 위해서다.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부모들이라도 그 교훈을 마음에 새기기를!🫰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