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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엘리야의 생애 (The Life of Elijah)

[연재 41] The Life of Elijah

En Hakkore 2025. 6. 25. 13:23

과부가 자신의 죄를 기억함

그 가련한 과부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으로 인해 크게 상심했다. 그리고 엘리야에 대한 그녀의 말에는 믿음과 불신앙 그리고 교만과 겸손이 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그녀의 말은, 그것의 앞뒤가 맞지 않고 변덕스러운 성격이 암시하듯이, 그녀의 동요된 마음이 통제되지 않고 폭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그녀는 엘리야에게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묻는다.

이것은 "내가 당신을 불쾌하게 한 일이 있느냐" 혹은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준 것이 있느냐" 는 물음이다. 그녀는 혹시라도 엘리야가 자기 아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면 차라리 자기가 그를 보지 못했기를 바랐다.

그러나 둘째, 그녀는 여전히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즉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이즈음에는 이스라엘을 휩쓸고 있는 끔찍한 가뭄이 엘리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고통 역시 같은 방식으로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셋째, 그녀는 몸을 낮추며 묻는다.

"내 죄를 생각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아마도 이것은 자신이 전에 바알을 섬겼던 것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그녀가 살았던 시돈은 이세벨의 고향이며 바알 신앙의 본거지였다-역주).

종종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사용해 우리가 전에 지었던 죄를 기억하게 하신다. 대개 우리는 일상적인 삶속에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깊은 인식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기 쉽다.

특히 우리의 쌀통에 쌀이 가득 채워져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을 민감하게 의식하는 것은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특별한 징계의 손길에 얻어맞을 때뿐이다.

죽음이 그녀의 가정을 엄습하자 죄의 문제가 나왔다. 죽음은 "죄의 삯" 이기 때문이다(롬 6:23).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와 씻음을 얻기 위해(요일 1:9)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태도는, 언제나 우리가 무언가를 잃는 것을 우리의 죄악된 마음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여기고, 부지런히 자신을 살피고,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그 죄악을 주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아멘🌱

대개 이 지점에서 믿는 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불신자는 고통스러운 문제나 상실을 겪을 때 즉시 마음의 교만과 자기의를 드러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어. 나는 늘 옳은 일을 하려고 했어. 나는 이런 슬픔을 겪지 않는 내 이웃들보다 더 나쁘지 않아.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재앙을 겪어야 하는 거야?"

이것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의 태도와 얼마나 다른가! 그는 자신을 믿지 않고, 자신의 여러 가지 단점들을 인식하고, 혹시 자기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리지 않았을지 것정한다. 그런 이는 부지런히 자신의 행위를 살핀다(학 1:5).

그는 자신의 이전의 삶의 방식을 뒤돌아보고 현재의 행위들을 조심스레 검토함으로써 자신이 잘못한 일과 지금도 여전히 잘못하고 있는 일들을 찾아내 그것을 바로잡으려 한다. 오직 그렇게 할 때만 우리의 마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평안이 굳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우리는 이처럼 자신의 많은 죄들을 상기하고 그것들에 비추어 자신을 판단하는 것을 통해서만 온유하고 순종적이고 인내하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아론이 그랬다. 그는 자기 집에 하나님의 무거운 심판이 임했을 때 "잠잠했다"(레 10:3). 자기 아들들을 가르치고 징계하는 데 실패했던 가련한 늙은 제사장 엘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기 아들들이 졸지에 죽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삼상 3:18).

자녀의 죽음은 때로 부모들에게 이미 오래 전에 자신들이 지었던 죄를 상기시킨다. 자신이 죄를 범해 낳은 아들이 죽었을 때 다윗이 보인 반응이 그러했다(삼하 12장). 그러나 그의 상실이 얼마나 크든, 그의 슬픔이 얼마나 깊든, 올바른 마음을 지닌 성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늘 다음과 같을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시 119:75).🕊

그 과부와 그녀의 아들은 다른 사람들이 기근으로 인해 교통을 겪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기적적으로 식량을 공급받으며 여러 날 동안 살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데려가신 것으로 인해 자신이 이전에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그녀는 자기 아들의 죽음에 하나님이 개입하셨음을 시인하는 듯 보이지만, 엘리야가 그 일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아들을 잃은 것을 엘리야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마치 그가 자신이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온 것처럼 말이다. 엘리야는 이미 아합에게 보냄을 받아 이스라엘이 지은 죄로 인해 그들에게 임할 가뭄을 선포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이제 그녀는 그의 존재를 두려워했고 그를 보는 것만으로 놀랐다.

아, 우리는 자신의 고통의 이유를 얼마나 쉽게 오해하고 엉뚱하게 탓하는가!

Arthur W. Pink 엘리야의 생애 p132

🪴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학 1:5).

☘️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레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