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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32] 엘리사의 기적이야기 본문

강해시리즈/엘리사의 생애 (Gleanings From Elisha)

[비움 32] 엘리사의 기적이야기

En Hakkore 2024. 12. 31. 21:02

13.기적. 내가 아니라 하나님 명령이다(나아만의 병이 낫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열왕기하 5장 12-14절).

이상하게도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천대하고 있다. 그는 아람을 대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나가서 존경을 표하고 치료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엘리사는 나아만을 천대하며 종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나아만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 왔으며 지금 엘리사가 있는 곳을 떠나려고 한다. 엘리사 선지자가 나아만에게" 요단강으로 가서 일곱 번 씻으시오." 라고 말한 것은 치료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아만의 교만한 마음을 시험하는 것이다.

병을 낫기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죄로 가득차고 중생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죄악의 본성이 하나님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나아만이 치료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와야 하고 지혜와 경험, 명예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인간의 죄악과 교만은 자신이 가장 비참한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해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결국에는 순종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문둥병으로 고생하는 나아만의 마음은 이미 낮아져 있으며 엘리사 선지자의 맘에 반드시 순종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타락한 죄의 본성을 모르는 말이다.

외부적인 조건이 아무리 나쁘고 어렵더라도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죄악의 권세를 인간의 힘으로 이기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이 죄의 권세가 인간의 마음에 의로움과 교만과 죄악을 가득 채워서,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마음은 절대 없어지지 않으며 거듭난 사람의 마음에도 아직 남아 있다. 바로 지금 나아만의 모습이 이렇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간절한 기도와 절박한 현실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해서 도움을 얻고자 하지만,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분노하며 불쾌한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가진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욘 4:4).

라고 온유하게 물어 볼 때 반드시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겸손해져야 한다.🐪

나아만처럼 우리가 이겨내야 할 마음과 자세가 이 구절에 있다. 지금 나아만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나아만의 모습은 구원받지 못한 자연인의 모습이다. 세상의 자연인과 죄인들은 자신만의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

즉 구원은 이렇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행을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과거의 일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구원이 시작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더욱 비참한 것은 복음을 쉽게 생각한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죄악의 모습을 벗어버리지 못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으니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구원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바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다. 이러한 생각은 반드시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다.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싫어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나아만과 동일한 어리석은 가운데 살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과 의지를 가지고 믿어온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나아만 장군의 개인적인 생각은 무엇인가? 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가?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하 5:11절).

지금 나아만은 자신의 높은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한다. 병을 치료받아 건강해지고 싶은 것이다. 비록 문둥병으로 멀리 있는 이곳까지 왔지만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얼마나 미련한 행동인가! 자기의 자존심과 위헤를 지키기 위해서 묵숨을 버리다니! 이것이 사단이 자신에게 속한 희생물을 붙잡고 있는 방법이다. 사단은 집요한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위대하고 큰 능력의 손길이 구해내기 전까지는 죄인들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 나아만은 확실하지도 않는 병 치료 방법을 엘리사 선자가가 아니라 종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요단강으로 가서 일곱 번 씻으시오, 그러면 당신의 피부가 고침을 받아 깨끗해질 것이요."

이 말은 마치 나아만을 조롱하는 것 같았고, 그의 감정을 무시하는 요구이며, 나아만의 영광을 비참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이 없는 나아만의 교만한 마음이 이제 선지자의 요구를 거부하게 한다.

그러나 나아만의 현실을 본다면 자신의 요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병을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이지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 그가 요구해야 하는 것은 병을 위한 자비와 은혜이지 자신의 감정과 자존심을 지키는 요구사항이 아니다.

이와 동일하게 죄악으로 가득한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인간은 원죄로 죽어야 하고 심판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고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선언하는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와 긍휼이다. 아멘!

따라서 하나님만이 죄인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 수가 있으며 구원에 필요한 조건과 요구사항을 말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악인에게 그 길을 버리라고 명령한다. 반드시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뜻과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고집 센 마음에서 돌이키며 굽히지 않는 주장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고 높이기 위해서 하나님과 대적하기를 쉬지 않는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 10:3).

더욱 불행한 사실은 죄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

Arthur W. Pink 엘리사의 기적 '비움' p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