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비움 29] 엘리사의 기적이야기 본문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열왕기하 5:9).
나아만은 자신의 영광스러운 성공을 나타내는 말과 전차를 가지고 선지자 집 앞까지 갔다. 이것은 죄 가운데 서 있는 죄인의 모습을 나타낸다. 지금 나아만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자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마치 세상 사람이 아직도 자신의 의로움을 가지고 죄에서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과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과 같다.
아무리 나아만이 전차와 말을 타고 있을지라도 그는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다. 아무리 비싼 장식과 금으로 치장하고 좋은 옷을 입었을지라도 그의 병은 낫지 않는다. 그가 가지고 온 황금이 아무리 않을지라도 문둥병을 치료하는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지금 죄인의 모습과 동일하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많은 재물과 좋은 보석으로 치장하고 훌륭한 인격과 칭찬을 듣고 있을지라도 이것들이 그 사람을 구원시키지 못한다.
구원의 모든 시작과 끝은 하나님에 의해서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아 구원을 완성시킨다. 절대로 사람에 의해서 구원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할 수 없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딛 3:5-6).
지금 나아만 장군이 타고 있는 병거의 모습은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 본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가! 세상에서 치료할 수 없는 가장 무서운 병인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 온갖 화려한 치장을 하고 세상의 권력을 나타내는 전차위에 앉아 있다.
지금 자신은 죽어가고 있지만 그의 능력과 신분을 나타내기에 열중하고 있는 나아만의 모습은 세상의 죄인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만나려 왔지만 그의 뒤에는 황금과 보물을 숨기고 있다.
세상의 죄인들이 이런 모습이다. 절대 자신이 비워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죄의 심판이 목전에 있지만, 죄로 인해서 몸이 썩어 부패해가고 있지만 자기 만족과 자만심, 교만한 마음, 명예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고 죄와 함께 사망의 심판을 받았다. 이렇게 사망 선고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죄와 교만, 부패하고 썩어 있는 부분을 도려내기까지, 죄와 심판을 인정하지 않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아만은 거듭나지 못한 세상 사람의 모형이다. 죄와 심판이 이미 임하였지만 이것을 알지도 못하고 자기만족과 교만 가운데 빠져 있으며 자신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죄인의 모형이 된다.
나아만은 자신이 가지고 온 보물로 하나님의 구원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동일하게 세상에서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망상에 빠져 있다.
나아만은 자신의 보물로 선지자의 마음을 훔치고 문둥병을 치료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에게는 당연한 생각이며 세상 사람들의 본성적인 성품이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전심을 다하지 않는다. 주일 출석, 적당한 헌금, 봉사,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구원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라, 온 삶을 바치는 전적인 헌신이다.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영적인 것에 있어서 우리는 파산자며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자비이다. 바로 여기서 구원이 시작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세상엣 아무리 학식이 많고 높운 지위와 명예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것으로 영적인 일을 알거나 판단할 수 없다. 영적인 일에서 우리는 장님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보기 원하거나 자신의 비참함과 구원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인 각성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영적인 각성과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낮아지게 하며 성령의 역사를 간절하게 구하게 한다. 바로 그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 보고 있는 말씀에서 아람 왕 벤하닷은 부하 나아만을 직접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보내지 않았다. 대신 편지를 써서 이스라엘 왕에게 보냈고 나아만을 화려한 병거와 말에 태웠으며 화려한 보물을 치료의 대가로 준비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소용없는 행동이다.
나아만이 보여주고 있는 부요함과 화려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한다면 화려함이 아니라 진실함이며 교만함이 아니라 겸손함을 가지고 와야 한다.
Arthur W. Pink 엘리사의 기적 '비움'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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