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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27] 엘리사의 기적이야기 본문

강해시리즈/엘리사의 생애 (Gleanings From Elisha)

[비움 27] 엘리사의 기적이야기

En Hakkore 2024. 12. 31. 20:59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다. 정말 작은 계집종의 말 한마디로 왕의 마음이 움직였고 나아만 장군은 예물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향해 떠났다.

만일 하나님의 치밀한 섭리와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도 소녀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했을 것이다. 어떻게 무슨 이유로 나아만과 왕은 어린 소녀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이행하였을까?

하나님이 원하면 그의 자비는 끊임 없이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듣는 자의 마음도 열어준다. 그래서 복음으로 영혼의 변화를 일으키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게 만든다.

신약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 빌립에게 광야 길을 명령한 하나님은 거기서 이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했다(행 8:26-31). 이방인의 전도를 주저하는 베드로에게 고넬료와 그의 가족을 붙여 주었다. 아람의 왕 또한 하나님에게 쓰임 받는 도구가 되어 장군이 이스라엘에게 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왕하 5:5).

지금 나아만은 많은 금액의 재물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린 소녀가 금과 같은 재물에 대해서 금과 같은 재물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알았다는 사실이다.

오직 자신의 경험에 의지해서 분에 넘치는 재물을 싣고서 이스라엘을 향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행동이다.

하나님의 선한 능력을 알지 못하는 그는 마치 자신이 준비한 재물이 병을 치료하는 일에 있어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살아온 삶을 돌아본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비싼 돈을 주고 사려고 했다.

또한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임을 느끼고 깊은 한숨과 절망이 가득해야만 하나님께서 받아주고 평화를 허락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오해이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자기 자학에서 시작되거나 비싼 재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의 기분, 감정, 경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영혼의 궁핍한 상태가 되어야 하나님이 부어주는 능력과 은혜를 가질 수 있다.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왕하 5:5-7).

이 말씀을 통해서 한심하고 불쌍한 이스라엘의 현실을 보게 된다. 왜 하나님께서 아람족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노략하게 했는지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것은 아무런 죄가 되지 않으며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이 전쟁에서 패한 이유가 분명하다.

이방인으로 인해 전쟁이 찾아 왔을 때 히스기야 왕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원수의 편지를 내놓았다(사 37:14). 그러나 지금 말씀에ㅔ 보이는 왕은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거나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생명만을 생각하였다.

지금 보이는 이스라엘 왕과 나아만의 작은 여종의 행동을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를 알게 된다. 이 차이점을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이스라엘 왕은 천박하고 믿음 없는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소녀는 자신이 처해 있는 절박하고 비참한 상황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나타냈다.

둘째, 어린 소녀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주는 기적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의 행동과 말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셋째, 어린 소녀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그러아 이스라엘 왕은 이미 하나니메 대한 모든 사실을 잊어버렸다.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왕하 5:7).

이 말씀을 보면 마치 이스라엘의 왕이 겸손하고 정직하며 경건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는 이미 하나님을 버렸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 믿음, 확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람 왕의 편지를 보고 하나님을 찾아 도움을 구하고 기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람 왕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다. 만일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있었다면 그는 반드시 평안과 안식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왕은 이미 하나님을 버렸고 더욱 불행한 것은 자신이 섬기던 우상도 믿지 못한 사실이다.

이 7절의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과 두려움을 준다. 대부분 이 말씀이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커다란 명령이 있을 때 그것을 셀 수 없을 정도로 거부했고, 혹독한 좌절과 절망, 고통과 고난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거부하고, 동시에 자신이 할 수 없다고 도망쳤다.

언제나 자신이 약하고 능력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 다녔다. 하나님의 능력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부정과 좌절, 피해의식으로 영혼을 가득채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사용하기를 기뻐하며, 우리의 영혼이 빨리 비워지기를 기다린다.

이때 하나님이 부어주는 은혜는 충만하며 차고 넘친다. 비록 우리가 연약하고 능력이 옶지만 이것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새롭게ㅔ 임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연약함에서 시작하며 우리를 강하게 한다. 반드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은혜 안에서 굳건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강하고 담대하라"(딤후 2:1).

Arthur W. Pink 엘리사의 기적 '비움' p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