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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80] 최후의 정복(수 11:1-12:24)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80] 최후의 정복(수 11:1-12:24)

En Hakkore 2024. 11. 17. 19:34

하나님의 약속들은 믿음의 양식이며, 믿음은 선한 행실을 일구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54-57에서 주는 신적 확신을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알리라"(고전 15:58).

영적인 특권을 누린다고 해서 신자의 책임이 사라지거나 그 책임을 이행하는데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영적 특권을 누리므로 의무가 추가된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사람은 극단으로 치우치는 존재여서 심지어 그리스도인조차도 진리의 어느 한 면에 깊이 감동을 받으면 거기에만 물입되어 그것과 균형을 맞추는 반대의 면을 보지 못하고 간과해 버리기가 매우 쉽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일을 다 행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할 일을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모든 일을 그분의 덕분으로 여길 것이다.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사 26:12).

그렇다고 해서 그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다음에 사실이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다.

"...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그러나 이 말씀 역시 바로 뒤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13절) 라는 말씀이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의 양면이 함께 나타나는데, 그 순서를 주목하기 바란다. 먼저 우리의 임무를 강조하고 그 다음에 그 일을 위해 동기를 부여하는 격려가 이어진다. 그런 격려는 나태함을 부추기기 위함이 아니라 노력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고 그가 지정하신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가 우리를 위해 강력히 역사하시기를 기대할 수가 수도 없다. 우리의 양식을 하나님이 보장해 주셨지만(사 33:16), 그런데도 우리가 그것을 위해 수고해야 하는 것이다(요 6:27).

빌립보서 2:12 사이의 관계는 이중적인데, 이는 우리를 격려하고 동시에 우리를 낮추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의 연약함을 절실히 의식하며, 또한 세상과 육체와 마귀가 그를 대적하여 진치고 있음을 알고 있고, 또한 그의 앞에 놓인 과제들(자연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영적인 과제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이 일들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자는 홀로 내버려진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를 위해 그의 속에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그 자신에게 충족하다는 확신을 갖고 전진해야 한다.👌

그에게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가 올바로 처신하면 반드시 도움이 그에게 베풀어진다. 그러나 반면에 신자는 "두렵고 떨림으로", 즉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자세로, 그 자신의 구원을 스스로 이루어 가야 한다.
그러니 교만하고 독립적인 자들에게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본성적 바리새인들이어서, 자기를 자랑하고 높이기 쉽상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그런 자세를 벗어 버릴 수 있을까?

여기서도 빌립보서 2:13이 답을 제시해 준다. 우리 속에서 찬송 받을 만한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나 자신은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나는 홀로 내버려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마음에 새겨야 한다.

자기를 낮추는 자세를 갖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바로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요 15:3).아멘 👍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