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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164] 므비보셋에게 친절을 베풂 1(사무엘하 9장)
En Hakkore 2024. 2. 26. 08:33므비보셋, 우리의 모습
다음으로 다윗이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었던 사람에 대해 좀더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그의 이름에 대해 살펴보자. 요나단의 아들은 "므비보셋"(삼하 9:6)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수치스러운 물건"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 이름은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의 상태를 얼마나 정확하게 묘사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사 64:6)라 말씀한다.
우리 모두가 죄로 인해 오염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철저히 타락하고 부패한 상태에 있다. 우리의 이해력은 영적인 일들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워져 있다. 우리의 의지는 하나님의 그것과 맞서고, 우리의 마음은 절망적일 만큼 약하고, 우리의 양심은 무감각하고, 우리의 힘은 사탄을 섬기는 데 쓰이고 있다.
그리고 거룩하신 분이 보실 때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다." 그러므로 실제로 우리는"수치스러운 물건"이다. 본래 우리 안에는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다"(사 1:6).
오, 우리는 나병환자와 더불어 "부정하다 부정하다"(레 13:45), 또 욥과 더불어 "나는 비천하오니"(욥 40:4)라고 외쳐야 할 수많은 이유를 갖고 있다!
둘째, 므비보셋은 다윗을 피해 달아난 자였다.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전장에서 살해당했고 다윗이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사울 집안의 생존자들에게 전해지자 므비보셋과 그의 유모는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르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삼하 4:4). 그들은 다윗을 피하기가 바빴다. 이것은 죄인들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과 전지하심에 대한 지식은 그들을 낙심케 한다. 따라서 그들은 그분과 아무 관계도 맺지 않으려 한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친다"(잠 28:1).
셋째, 므비보셋은 절름발이었다.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삼하 9:13). 이것은 그리스도를 떠난 자들의 상황을 얼머나 정확하게 묘사하는가! 자연인은 하나님의 명령의 길을 따라 달리거나 생명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걷지 못한다. 그는 영적인 절름발이다.
중생하지 못한 자가 하나님의 요구를 총족시키고 그분 앞에서 온전하게 걷는 일에 완전히 실패한다는 것은 성경 곳곳에 분명하게 쓰여 있는 진리다. 비록 오늘날의 설교자들에게는 그런 사실이 그다지 강조되지 않지만 말이다.
인간의 위대성, 그의 자유의지, 아무 때라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함 등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을 마비시키고 있는 마취제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요 6:44). 그리스도의 이런 말씀은 죄인은 곧 절름발이라는 엄중한 사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증명하는가!
넷째, 므비보셋은 떨어져서(through a fall) 절름발이가 되었다.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삼하 4:4). 참으로 성경은 얼마나 놀라운 책인가! 그럼에도 그것이 갖고 있는 경이와 아름다움을 인식하려면 하나님의 영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눈이 필요하다!🌱
영적 분별력을 지닌 자들은 내가 여기에서 한 개인에게 속한 역사적인 이야기 이상을 말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오히려 이 이야기는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예표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인류는 날 때부터 지금과 같은 상황에 있었던 게 아니다.
인류는 그의 창조주께서 그를 보시고 "좋다"고 선언하셨을 때 절름발이 상태에 있지 않았다. 인간의 영혼의 기능들이 영적으로 절름발이가 된 것은 타락(the fall) - 아담 안에서의 우리의 넘어짐-의 결과였다. 그 타락 때문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 8:8).
다섯째, 므비보셋이 거주하던 곳에 주목해 보자. 그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떠난 사람들은 결코 예루살렘에서 살지 않는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터"를 의미한다. 그리고 성경이 선포하듯이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 48:22). 그들이 오직 그 안에서만 평강을 발견할 수 있는 분을 무시하는데 어떻게 그들 안에 평강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다"(사 57:20). 그들은 불평하고 불만족스러워한다. 아니다, 가련한 므비보셋이 거주하건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었다. 그는 "로드발"에서 살았다(삼하 9:4).
로드발은 "목초지가 없는 곳"을 의미한다. 이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분명히 이것은 단순한 인간의 창의력이 지어낸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즉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그 안에서 악한 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얼마나 정확하게 묘사하는가!
이것은 영혼을 위한 아무런 양식도 없는 세상이다. 영적 식량과 관련해 말한다면, 이것은 거대한 "황무지"라고 할 수 있다(신 32:10). 그러나 그런 세상에서 그리고 그 세상이 일부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 2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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