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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234]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34]

En Hakkore 2024. 7. 29. 11:50

은혜를 구하는 일 3(마 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란 의무적으로 책임을 다해야 할 본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선하고 완전한 모든 선물을 주시는 분께 우리가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

즉 현세적으로나 영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을 그에게서 구하고, 주님의 선하심과 자애로우심을 승인하며 그의 수많은 자비하심에 감사드리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한 점을 이행하지 않는 일은 변명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는다는 듯이 사는 사람처럼 만들어버리며 하나님께서 당연히 받으셔야 할 것을 그에게 드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결점이 아니라 회개하고 고백해야 할 극악한 죄로 간주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기도가 귀중한 특권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그들은 높은 곳에 계신 왕을 뵈올 수 있으며,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분과 친히 교제하고, 그의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편안히 열어 놓으며, 그가 "우리의 고난의 때에 조속히 도와" 주시는 분임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는 이 특권을 거의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소홀히 여기고 있다. 기도가 책임을 다해야 하는 본분으로서 그리고 귀중한 특권으로 자유로이 허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고백을 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의무를 수행하고 그 특권을 그들 자신에게 유용하게 사용하는데 있어서 지극히 태만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어째서 그럴까?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기도하는 마음을 거두어 가시고,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는 자유를 거절하셨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하는데,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지 않는 죄에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악한 죄까지 더 범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해칠 뿐만 아니라 모욕까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것을 변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주권에 간청할 때 기도를 악용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의 빛을 즐거워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우리 죄가 짙은 구름처럼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사 59:2).

우리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 손을 막았기 때문이다(렘 5:24).

우리의 마음이 냉담하고 기도와 멀어졌다는 그것은 우리가 성령을 슬프게 해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못은 전적으로 우리 편에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자유롭고 규칙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 중에서 교만의 작용을 지적할 수 있다. 교만은 독립적이고 자기만족인 마음을 생기게 한다.

굴욕 속에 우리의 자리를 마련해 두고 빈손의 거지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본성적으로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하는 초기에는 사실 그렇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때는 자신을 비우고 전적으로 자기의 밖으로부터 구원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해가 거듭될수록 겸손한 마음이 점증해가는 일이란 지극히 드문 일이다.

우리가 성경 말씀에 숙달할수록 그리고 신앙의 신비에 익숙해질수록 자기 만족감이 우리를 차지하기가 쉽다.

즉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것"인데 우리는 더 많이 교만해지면 질수록 결핍함을 덜 느끼게 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더 형식적으로 그리고 더 드물게 구하게 된다.

나태한 마음은 기도생활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혼도 편안한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는 권고를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베드로가 맨 처음에 실패했던 것도 바로 이 점에서였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잠든 것이다.

기도란 '힘을 써야' 하는 것이며(롬 15:30), '애써 수고해야'(골 4:12), '씨름하는 것이다'(엡 6:12, 18). 그러므로 무기력함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 때에는 그렇게 힘을 써 분발할 수가 없다.

불신앙의 힘도 기도하는 마음을 사그러들게 한다. 불신앙은 우리에게 싫은 생각을 일으키고 귀찮아지게 하며, 그 생각들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한다. 믿음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에서만 우리는 이 거룩한 일을 실행함에 있어서 어떤 성공이라도 기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적인 것과 놀아나고 육체적인 욕망에 굴복하며 사탄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면 믿음의 숨결은 짓눌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불신앙의 더러운 분위기로 숨막히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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