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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83]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83]

En Hakkore 2024. 7. 14. 11:04

율법과 보복 3(마 5:38-42)

주님의 산상 설교 중에서 이 부분은, 여기에 다른 구절들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의미를 붙이는 상당수의 맹신자들에 의해 내지 왜곡되어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들은 상세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이미 이에 대해 두 장을 할애하였는데, 1939년도 '성서연구'에서 게재된 내용을 새로운 독자들이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잠깐 요약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본문에서 모세의 법규를 폐지하고 대신 더욱 자비롭고 영적인 법칙으로 대치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은 (산상 설교의 앞 부분에서도 그러했듯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중요한 잘못을 비난하고, 율법의 높은 수준의 요구를 제시하셨던 것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38절)란 말씀은 모세 오경에서 세 번 되풀이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재판법 중 하나로 공표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음 세 가지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 행악자에 대한 유익한 경고의 목적, 그리고 다른 사람을 상해한 자에 대해 너무 가혹하게 응징하는 판결을 막는다는 목적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공정하고, 자비롭고, 유익한 것이었다.

만일 폭행죄를 범한 자에게는 신체적인 징벌로 처벌된다는 이 법규의 원칙이 오늘날에도 보편타당하고 엄격하고 시행된다면 이 세상은 좀 더 살기 완전한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은 유대인 지도자들에 의해 크게 왜곡되었다.

그들은 이 법을 재판관들에게 한정시키는 대신에 일반적으로 적용시켜 각 사람은 자신이 받은 손해를 개인적으로 보복할 권리가 있다고 가르쳤으며, 그에 따라 악의의 정신이 길러지고 폭력 행위가 용납되었던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39절).

이 말씀은 우리가 마음대로 이 법을 다루거나, 우리에게 행한 대로 원수에게 보복하는 것이 금해져 있음을 뜻한다. 우리는 좀 더 고귀한 원리와 영적인 면을 생각하여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 교훈은 신약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잠 20:22; 24:29; 25:21,22의 말씀에서도 분명히 사적인 보복은 금지되어 있다. 게다가 주님은 도덕법에 대한 강력한 요구를 강조하고 계신다.

그러나 율법도 복음도 우리에게 악한 자에 대해서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으로 저항하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특히 주의하자. 우리에게 가해진 잘못이나 우리에게 끼쳐진 위해에 대해 무시하는 것이 곧 우리의 임무와 명백히 어긋나는 경우들이 있다.

절대로 공의를 피하거나, 혹은 공의를 무시함으로써 죄에 동참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모든 길에서 우리는 의를 주목해야 한다.

관용과 무법은 아주 다른 것이다. 비록 기꺼이 자기 자신의 권리는 포기할지라도, 사회의 안전을 위협할 자를 방치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어느 형제가 우리를 침해했을 때, 그는 징계받아야만 하며 눈감아져서는 안 된다.

만일 그가 사리에 어긋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문제를 교회로 가져가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반항적이고 방약무인한다면 사귈 수 없는 자로 여겨 벌해야 한다(마 18:15-17).

그리스도께서도 성전에서 아버지의 집이 장사하는 집과 강도의 굴혈로 변한 것을 보셨을 때 악에 대항하셨다(요 2:13-17). 재판관의 직무는 하나님의 위임하신 바이며, 우리는 그것을 지지하고 협조하도록 도덕적으로 매여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악의와 보복의 정신에서 법에 호소해서는 아니되며, 하나님께서 명하셨고 사회의 이익이 이를 요구할 때에만 법에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예외란 규칙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칙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교훈이 엄밀한 문자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그 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평화의 왕 그리스도의 제자는 화평의 사람이어야 하며, 온유하게 과실을 견디고, 참을성 있게 손해를 감수하며, 관대하게 고통을 감당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보복 행위가 금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바람 그 자체도 허용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생활의 거룩함뿐만 아니라 마음의 거룩함도 원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악의와 원한, 분노와 불평, 악한 말과 몰인정한 태도들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비심과 동정심, 오래 참음으로 옷 입어야 한다. 이에서 모자람은 그리스도인의 자격에 미달하는 것이다.

우리는 악에 대하여 악으로 갚는 것이 금해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우리에게 악의로 행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면서 악에 대해 선으로 대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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