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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79]

En Hakkore 2024. 7. 14. 11:02

율법과 보복 2(마 5:38-4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내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39절).

이 훈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르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문맥에 대해서, 그리고 신앙의 일반적인 유추와 조회가 이루어지도록 마땅히 고려해 보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경을 모순 그 자체로 만드는 즉각적인 위험에 처하게 된다.

우리가 계속하여 살펴온 바대로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중요한 모세의 법규를 반박하신 것도, 그리고 그 자리를 제자들이 지켜야 할 좀 더 완화되고 자비로워진 규칙으로 대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산상 설교의 이전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서기관들의 잘못을 힐책하고, 바리새인들의 악한 행위를 꾸짖으신 것이었다. 그들은 재판관들의 권한인 재판법, 즉 신체 상해죄들에 대해 해당되는 징벌을 가하도록 엄격하게 고수되는 법을 아무데나 적용하였다.

단지 재판관들의 소임인 이 법이 일반적으로 적용되어졌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법을 다루도록 허용되었다. 각 개인은 사적으로 자신의 손해를 보복하였는데, 악의와 복수의 정신이 용서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추겨졌다.

주님께서 "악을 대적하지 말라" 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이와 같이 사악하게 악용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좀 더 문자 그대로 말하자면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이다. 즉, 우리에게 위해를 가한 악한 개인을 의미한다.

대적하지 말라, 다시 말하여 너희에게 행한 대로 적에게 보복함으로써 너희의 손으로 법을 다루려고 생각하지 말라. 적에 대하여 복수심을 품지 말고 좀더 고귀한 원칙, 좀 더 영적인 면을 고려해야 행동하라.♡

이러한 것이 분명히 이 교훈의 취지이다. 그러면 이제 이 교훈에 담겨진 특별한 암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F. W. 그랜트(F. W. Grant: 플리머스 형제단의 지도자) 같은 이도 다음과 같이 동의하였다.

"물론 율법의 의도 여전히 의이다. 그러나 그 의가 사람들의 개인적인 잘못에 대해서 강제로 어떤 일을 해도 좋다고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이나 그 형벌이 폐지된다고 생각할 여지는 없다.

세상의 정부는 논외의 일이고 여기에서는 제자들의 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율법아래 있다면 그들은 구속(속박)되어 있는 것이며, 어떠한 특권도 누리지 못한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영구히 명하신 대로, 율법이 일반적으로 미치는 범위 안에서 그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제한 속에서도 여전히 여기에서 명해진 것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겉옷마저도 가져가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분명히 그것은 우리의 권한 내에 선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 동기가 다른 경우에는, 우리는 이런 종류의 권한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공의를 피하거나, 혹은 공의를 경시하는 자를 도울 권한은 없다.

하나님은 결코 그의 성도들이 무법함을 허용받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는 일반 규칙을 정하시지 않는다"('숫자로 나타낸 성경' 중에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에서 법적인 절차를 밟아 악한 자를 대적하는 일을 금하신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를 금하시고 있다. 공적 배상은 재판관이 하나님의 법의 공의와 자비에 따라 이웃을 상해한 범죄자에게 판결을 언도하는 일이다.

사적 보복은 재판관이 아닌 사람이 마음대로 문제를 처리하여 자기에게 피해를 입힌 자에게 보복하는 일이다. 공적 배상은 확실히 허용되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보복에 대해서는 분명히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롬 12:17)라고 명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재판관에 대해서는 행악자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사자'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이 같은 교훈은 신약에 국한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판단을 그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신약과 구약을 비교해 보면 양쪽 다 같은 의무 규휼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잠 25:21, 22).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20).

잠언 25장에 나와 있는 이 구절을 언급하면서 오래 전 한 저술가는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지적한 바 있다.

"사랑의 법이 이 권고에서보다도 그리스도나 사도들의 어떤 교훈에서 더 영적으로 설명되어진 것은 아니다." 그 명백한 의미는 이러하다. 즉, 너희를 미워하는 자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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