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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128] 언약궤를 찾아옴(2)(사무엘하 6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28] 언약궤를 찾아옴(2)(사무엘하 6장)

En Hakkore 2024. 2. 24. 15:58

세상 풍조에 대한 순응

오늘날 기독교계 안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무서운 혼란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떤 이유를 들이대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출 23:2).

하나님의 종들 중 누군가가 아무리 자신을 특별하게 여길지라도, 혹은 그것 때문에 아무리 인기없는 자가 될지라도, 하나님이 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충성"이다(고전 4:2). 그리고 충성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그분이 정하신 방식대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편의주의가 득세할 수도 있고, 타협의 시대의 조류가 될 수도 있다. 또는 어떤 원칙은 그것이 성경적으로 타당해서가 아니라 실용적이기 때문에 높이 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여호와께서 그분의 종들에게 요구하시는 의무의 엄격한 이행을 조금이라도 변경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점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사무엘하 6장에 기록된 엄중한 사건을 읽는 것은 헛일이나 다름없다.

오늘날 신앙을 고백하는 수많은 기독교 집단 안에 널리 퍼져 있는 느슨함은 무서울 정도다. 그리스도의 참된 종들 외에는 아무도 대표해서는 안 되는 자리들을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할 때도 편의용품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분의 성만찬은 아침 식사용 빵으로 변질되었다. 구속주의 흠 없는 인격을 가리키기 위해 "이 빵"(고전 11:26, 표준새번역 -역주) 대신 발효시킨 빵이 사용되고 있다.

만약 누군가 이런 혁신에 맞서 저항의 목소리를 높인다면, 비록 그가 아무리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말할지라도, 그는 "율법주의자" 혹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왕상 18:17)라고 불린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잘 하였도다"라는 칭찬을 얻고자 하는 자는 그런 비난조차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삼하 6:3a)

그렇게 함으로써 다윗과 그의 "지휘관들"(대상 13:1)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절차를 무시하고 그것을 자기들이 생각해 낸 것으로 대체했다.

민수기 4장 5-6절과 15절 그리고 7장 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길 때 어떤 방식으로 옮겨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명령을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인간이 자신이 정한 모든 규정에 무조건 순종할 것을 요구하신다.

다윗이 이 경우에 여호와의 명예와 영광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의 그런 고귀한 행동을 촉발했던 것이 그분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사랑은 정해진 통로를 통해 흘러나와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랑이 그 사랑의 대상을 기쁘게 하려면, 그것은 그 대상이 요구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무엇보다도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그분이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본을 따라"(히 8:5)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신교인들 중 많은 이들이 로마 카톨릭교인들이 갖고 있는 인간적인 고안, 미신적인 혁신, 그리고 비성경적인 형태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가령 미사를 지나치게 높이는 것, 신부들의 제의(祭衣), 향을 태우는 것, 형상을 숭배하는 것, 그리고 우리 구주의 어머니를 숭배하는 것 등이다. 많은 개신 교인들이 교회 안에 그런 것들을 도입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비성경적인 혹은 반성경적인 방식들에 대해서는 눈이 멀어 있다!

사랑하는이여, 잘 듣기 바란다. 우리가 거룩한 봉사와 하나님께 대한 예배에 도입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만약 우리가 그것과 관련해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라고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자의적 숭배"(골 2:23)에 불과하며, 따라서 마땅히 포기되어야 한다.💕

앞 장에서 지적했듯이, 이스라엘 지휘관들이 다윗에게 제공한 조언은 이방인들의 방식에 따르라는 것이었다. 블레셋의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소가 끄는 "새 수레"(삼상 6:7)에 실어 이스라엘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

만약 누군가 그것들을 사용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아마도 그것들을 사용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해 주는 그 어떤 성경 구절도 인용하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사용했던 방식이 "성곡을 거뒀다"고, 또 하나님이 그런 방식에 "은혜를 베푸셨다"고 주장했을지 모른다. 아, 그러나 블레셋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갖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이들이 우리가 그것들과 관련해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라고 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고 계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곧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명령을 그렇게 분명하게 어긴 것 때문에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셨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91

• 골로새서 2장 23절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