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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352]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52]

En Hakkore 2024. 7. 4. 11:38

하나님의 통치 원리 3(출애굽기 34:1-7)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출 34:5).

이것은 즉시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를 소개하고 있지만, 오호라,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이름에 관한 거룩한 기록의 가르침은 오늘날에 이르러 슬프게도 도외시되고 있다.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의 이르신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이름에 매우 열성을 가지고 계시므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맨 처음의 간구에 대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가르쳤다.

잠언 18:10에 이르시기를,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고 한다. 말라기 3:16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기념책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기록하였다고 한다. 또한 성경의 마지막 장에는 그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고 말한다(계 22:4).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이것은 출애굽기 33:19에서 하나님이 모세와 하신 약속의 성취가 되었다. 거기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고 말했다. 그의 이름을 "선포 하신다"는 것은 자신을 계시하고 그를 알게 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마치 천사 마리아가 잉태한 아들에 대하여 요셉에게 이르기를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고 한 것과 같이 예수님의 그 '이름'은 그의 어떠하심을 계시했으니, 곧 거룩하신 구세주이다.

또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세례를 줄 때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마 28:19)으로 하라고 명했던 것은, 삼위의 하나님이 지금 계시된 채로 서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스스로 계시하려고 한 특별한 성품은 자신을 나타내시고자 하는 이 은혜로운 현현의 장소와 환경을 살펴봄으로써 가장 잘 알 수 있다. 율법 증여와 관계된 곳은 시내 산이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에게 그의 은혜를 베푸신 일에 이어 여호와께서 그 자신의 권한을 강조하신 곳도 거기였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의 군림하신 곳도 거기였다. 그가 "공의와 정의가 그의 보좌의 기초"(시 97:2)가 된다고 알리신 곳도 그 산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성경에는 거룩한 통치에 연관된 그 '산'에 대한 많은 구절이 있다. 예를 들자면 주께서 '천국' 에 속할 대상자들이 준수해야 할 원칙들을 선포하신 것(마 5:1)도 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땅에 그의 메시야 왕국을 세우실 것을 의도하시므로 생생한 극적 장면을 보이시려고 그가 변화되신 곳도 "거룩한 산"(마 17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사 9:6), 그가 돌아오실 것을 말씀한 스가랴 14:4에 이르시기를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라고 한다.

불붙는 떨기나무에서,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반포하시기는 하였지만, 그곳에서는 그의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일에 있어 그분을 규정하는 원칙들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어떠하심, 곧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모든 흡족함, 스스로 존속하는 자,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자"(약 1:17)이심에 대한 계시였다.♥

그러한 처지에서의 그러한 계시는 얼마나 합당했던가! 모세는 처음에는 그를 환대했으나 그들의 짐이 더 무거워짐으로 차츰 그를 원망했던 압제받는 그의 형제들에게 먼저 자신을 나타내어야만 했고, 그 다음에는 증오와 무시하는 태도로 맞이했으나 나중에는 망설이며 타협하려던 바로 왕 앞에 자신을 나타내어야만 했다.

모세로 하여금 그가 위대하신 이, 곧 "스스로 있는 자" 의 사신이라는 이 영광된 사실을 견고히 붙들게 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

"여호와께서 그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이 말씀과 우리가 본 요한복음 17장의 말씀은 비교가 되거나 아니면 오히려 대조가 될 것이다. 거기에 보면 우리 구주께서 그를 이 땅에 보내신 이에게 그가 맡은 소임에 대해 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분은 더 상세히 말씀하실 때 먼저 말한 것은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출애굽기 34장에 기록된 사실과는 매우 다른데, 거기에서는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가운데(in govermmental) 자신을 알려주셨으나 여기에서는 자신을 은혜 가운데  있는 그의 아들에(Son in grace) 의하여 나타내셨다.

이 사실은 이어지는 구절에 의하여 즉시 입증되는데 거기 이르시기를,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라고 한다.

우리를 그리스도께 주신 것은 순전하고 단순하며, 영원하고 지극한 은혜였다. 또다시 26절에 보면,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아버지께 이르시기를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라고 한다.

오! 그것은 은혜, "그의 풍성한 은혜"(엡 1:17), "그의 영광의 은혜"(엡 1:6)로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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