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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107] 시험(사무엘하 2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07] 시험(사무엘하 2장)

En Hakkore 2024. 2. 22. 17:11

용서의 이유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시 130:4).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조롱하게" 하거나 확신을 갖고서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경외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더 담대하게 죄를 지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깊이 혐오하고 멀리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영적으로 깨달을 때 우리는 그런 은혜를 이유로 부주의해질 것이 아니라, 그토록 친절하고 선하신 분을 불쾌하게 해드리지 않기 위해서 좀더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그분을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라는 권고를 받는 까닭은 그가 구속의 날까지 성령에 의해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엡 4:30). 참으로 우리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무한히 크심을 인식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네가 어찌 그분을 향해 이 큰 죄악을 지을 수 있겠는가!" 하고 외쳐야 한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조롱하게" 가 아니라 "경외하게"다. 하나님이 신앙을 잃었다가 용서받고 은혜를 통해 다시 자신과의 교제를 회복한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다음과 같다.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시 85:8). 즉 냉담하게 되어 옛날 방식으로 되돌아가거나, 하나님의 자비를 악용하거나, 그분의 은혜를 음탕한 것으로 변질시키지 않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단호하게 노력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우리의 등짝에 아주 분명하게 보다 무거운 회초리가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내적 평안이 깨질 뿐 아니라, 우리의 외적 환경 역시 우리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

이 원리는 여호와께서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위협을 통해 아주 분명하게 진술되고 있다.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로 말미암아 너희를 칠 배나 더 치리라"(레 26:23-24).

만약 하나님의 불쾌한 심기를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들이 우리를 그분의 전능하신 손길 아래에 무릎 꿇게 하거나 우리의 길을 돌이키게 하지 못한다면, 또 그분의 보다 유순한 심판이 우리를 그런 길로 이끌지 못한다면, 분명히 그분은 우리에게 보다 고통스러운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에스라는 이 원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남은 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스 9:13-1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조롱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특히 그분이 우리를 일시적인 방황으로부터 회복시켜 주셨을 때 그렇게 하자.💕

은혜의 조건

여기에서 나는 사무엘하 2장 9-32절의 내용(이스라엘과 유다의 소규모 전투에 관한 이야기-역주)을 상세히 살피는 일은 삼가려고 한다. 대신 나는 그 내용이 그것에 이어지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는 점만을 밝혀 두고자 한다.

이 구절들은 서로 경쟁하는 당파들 사이의 충돌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도전장을 던진 것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추종하는 자들의 사령관이던 아브넬이었다(12절). 그리고 다윗 군대를 이끌던 요압이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13절). 어느 쪽도 그들의 군대 전체를 전장으로 이끌어가지 않았고, 그 전투에서 죽은 자도 소수에 불과했다(30절).

도전장을 내밀었던 아브넬의 사람들이 패주했고, 그날이 다 가기 전에 그들의 대장은 화의(和議)를 청했다. 다윗이 사울 집안과의 싸움을 원치 않고 그들과의 화해를 바라고 있음을 아는 요압은 싸움의 중지를 명령했다(28절). 그리고 양 편은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갔다(29-32절).

이제 내가 이 장에 "시험"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에 대해 한 마디 하고 끝내기로 하자.

지금 다윗은 하나님과의 "교제" 혹은 "친교"를 의미하는 지역인 헤브론에 있다. 유다 사람들은 그를 자기들의 왕으로 삼았다(삼하 2:4). 이것은 그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리라는 약속을 향한 큰 걸음이가는 했으나 어떤 의미로도 그 약속이 완성은 아니었다.

다윗은 죽은 사울을 따랐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친절한 말을 전하며(3-6절), 이제 그들이 자신에게 충성을 보일 것을 소망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7절). 그렇다면 여호와께서는 그와 경쟁하는 무리들의 마음을 그에게 돌리심으로써 계속해서 그를 위해 강력하게 역사하실 것인가?

다윗에게 그것이 필요한 것은 분명했다(7-10절).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 사이의 불화를 치유하시고 다윗이 모든 사람들에게 호의를 얻게 하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과연 그분이 그렇게 하실 것인가? 다윗의 현재의 행동은 그런 은혜를 얼마나 정당화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에 대해 상을 내리지는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지금 시험에 처해 있다. 그가 이 시험에서 어떻게 처신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하자.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