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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87] 시글락에서 맛본 슬픔(사무엘상 29-30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87] 시글락에서 맛본 슬픔(사무엘상 29-30장)

En Hakkore 2024. 2. 20. 12:36

비탄에 잠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삼상 30:3-4).

아, 이제 그는 하나님의 온전한 보호하심을 얻지 못하는 자의 비통함을 맛보고 있다. 그는 집 없는 방랑자로서 산 위에서 메추라기처럼 쫓겨도 보았고, 자기 땅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나발 같은 사람에게 조롱도 당해봤지만, 이런 종류의 비통함은 결코 경험헤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가드 왕의 보호를 받고 자신의 도시까지 갖고 있는 지금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을 경우 자신이 어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지 배우고 있다.🤞

사랑하는이여, 이것을 통해 우리가 자기의 뜻을 추구할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지 배우라. 처음으로 깊은 실망에 빠진 다윗은 소리 높여 울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훼손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다윗의 마음이 비탄에 잠긴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는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손에 이렇게까지 얻어맞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최근에도 아주 특별하게 그분의 돌보심의 대상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갑자기 그에게 엄하게 진노하시는 분으로 입장을 바꾸신 듯 보였다. 그동안 다윗은 자기 아버지의 양을 칠 때나, 사울의 궁정에 머물던 때나, 광야에서 씨름하며 체류하던 때나, 최근에 시글락에서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머물던 때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친절과 보호의 손길을 경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신실한 돌보심을 통한 보호에 익숙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런 보호하심이 중단 없이 계속되리라고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 그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이다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삼상 26:23-24)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여호와께서는 그의 적이 되시고 그와 맞서 싸우고 계신 듯 보였다. 물론 다윗의 양심은 그 이유를 식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양심은 여호와의 그런 타격이 정당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고통이 줄어든 것은 아니고, 오히려 커졌을 뿐이다"(B. W. Newton).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삼상 30:5).

사무엘서의 저자는 어째서 이미 아말렉 사람들이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2절) 하고 상세하게 말한 후에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다시 언급하는 것일까?

아, 우리가 그 해답을 멀리서 찾아야 할까?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여호와께서 다윗을 불쾌하게 여기시는 까닭을 알려 주고 계신 것이 아닐까?

그의 "두 아내"가 여호와와 그의 교제가 단절된 원인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사울이 다시 그를 공격하고(25:43-44와 25:1-2), 그가 불신앙으로 인해 두려워하고(27:1), 경건하지 않은 자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27:2-3)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내가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무엘상 25장 44절 이후의 모든 내용에 대한 열쇠를 제공하기 때문이며, 또 내가 아는 한 다른 어느 작가도 그것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삼상 30:6).

가련한 다윗이여! 설상가상이었다. 자신의 가족을 잃고 자신의 도시가 불타 마음이 찢어지던 차에 자신의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투덜거리고 폭동을 일으키려 한 것은 그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다.

다윗의 사람들은 모든 비난을 다윗에게 덮어씌우려 했는데, 그것은 그가 자기들을 아기스에게 이끌어가면서 시글락을 무방비 상태로 남겨 두었기 때문이며, 또 그가 전에 아말렉 사람들과 그들의 동맹자들을 공격해 그들을 화나게 했기 때문이었다(27:8-9). 이제 아말렉 사람들은 그 잘못된 일에 대해 복수할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빠질 때 어떤 식으로든 그 문제의 원인이 된 자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간과하고 그 안에 하나님의 손길에 적합한 관심을 두지 않게 된다"(B. W. Newton).

그렇다면 다윗에게 닥친 이 괴로운 시련을 통해 주님이 이루고자 하신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다윗을 짓눌러 절망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다, 오히혀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벧전 5:6)해지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하나님과의 행복한 교제를 회복하도록 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자기 사람에게 내리시는 가장 무서운 징계조차 그 징계의 대상에 대한 사랑 안에서 그리고 그 대상의 유익을 위해서 수행된다. 그러나 그런 징계의 유익을 얻고 그로 인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으려면, 우선 그 징계를 받는 사람이 "연단"을 받아야 한다(히 12:11).

그는 영적 유익을 얻기 전에 우선 회초리 밑에 무릎을 꿇고, 그것이 내리처지는 소리를 듣고, 그 회초리에 입을 맞춰야 한다. 그것은 이후의 결과를 통해 드러나듯이 우리의 주인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