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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33] 아둘람 굴에서(사무엘상 22장) 본문
놀랍고 복된 예표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고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삼상 22:1b)
아, 참된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이 처해 있는 외적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 다른 누군가와 참으로 결합되어 있다면, 그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든 그것은 우리의 사랑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다윗은 위험에 처해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는 동굴에서 초췌하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그를 향해 친절을 베풀고 자신들의 흔들림 없는 충성을 보여 주어야 할 더 큰 이유가 되었을 뿐이다.
다윗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고통스러운 시련을 통해 누가 자신의 가짜 친구이며 누가 그렇지 않은지 알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기름 부음을 받은 눈으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다윗의 후손이자 주님이셨던 분의 또다른 놀랍고도 복된 예표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우리는 여기에서 그분의 이 세상에서의 삶에 관한 예표를 식별할 수 있다. 그때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삶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칭호대로라면 이스라엘의 왕위는 그분의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마 2:2)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분과 함께 계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분은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셨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다.
그분은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 들린 자를 해방시키고, 굶주린 군중에게 먹을 것을 주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그러나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고 박해했듯이, 유대인의 우두머리들 -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 역시 그리스도를 시기하고 괴롭혔다. 사울이 이새의 아들의 목숨을 노렸듯이, 훗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역시 하나님의 아들의 목숨을 노렸다.
위에서 언급한 유비에 대해서는 아주 길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른 한 가지 사항에만 집중해 보자. 그것은 다윗이 처음에는 그 나라의 친구이자 은인으로 여겨지다가, 이제는 가련한 망명자로 간주되고 있다는 사실이 제공하는 엄중한 예시다.
다윗은 그 복된 분을 정확하게 예시했다. 그분은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사 53:3)였다. 성령이 신약성경에서 묘사하는 대로 그분이 걸으셨던 길을 추적해 보자. 그분은 이 사악한 세상이 원치 않는 분이었다. 그분의 애처로운 선언에 귀 기울여 보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 또한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요 7:53; 8:1)라는 말씀을 읽어보라. 그러면 다윗의 주님이 이 세상에서 집 없는 떠돌이셨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다윗을 찾아온 자들
그러나 그분을 이해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과 연계하고,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던"(사 53:3) 분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맡겼던 이들이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몇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지금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성경의 다음 구절에서 예표적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믿는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삼상 22:2). 이들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찾아오기에는 얼마나 이상한 무리였던가! 다윗을 찾아왔던 사람들 중 군대의 장관이나, 상당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나, 영토를 가진 왕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전혀 없었다. 그런 이들은 혹은 그들과 유사한 이들은 아둘람 굴보다 왕궁을 더 좋아했다.
사랑하는이여, 이런 설명이야말로 정확한 것 아닌가? 구약성경의 이런 기록들에는 역사적 설명 이상의 그 무엇, 즉 예표적이고 영적인 의미가 있음이 분명하다. 만약 다윗이 그리스도의 예표라면 영적인 의미가 있음이 분명하다.
만약 다윗이 그리스도의 예표라면, 그가 낮은 데 처했던 시기에 그를 찾아왔던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이 세상에 계실 때 그분을 찾아왔던 사람들을 대표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그렇게 했다. 제4복음서를 읽어보라.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주 예수님을 찾아왔던 자들이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자들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도움과 치유를 얻기 위해 그분을 찾아 왔던 자들은 문둥병자, 소경, 몸이 뒤틀린 자, 그리고 다리를 저는 자들이였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고, 많이 배우고, 힘을 지니고, 국가의 지도자 자리에 있는 자들은 그분에게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엘상 22장 서두에 실려 있는 내용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기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예표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이후의 기독교 시대 내내 일어났고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을 미리 보여 준다.
성령이 바울을 통해 선언하시듯,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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