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 존경받는 신학자 본훼퍼 목사 본문
1939년 미국에서 독일로 돌아온 본훼퍼는 히틀러에 맞서는 크라이사우 서클이라는 저항조직의 핵심부와 연결되었다. 이 모임에는 독일 개신교와 가톨릭의 저명인사들이 은밀하게 참여하고 있었다.
본훼퍼는 유대인의 탈출을 돕다가 1943년에 비밀 경찰에 의해서 체포되었다. 다음해 7월 20일 오후에 크라이사우 서클이 히틀러의 암살을 시도했다. 탁자에 설치된 폭탄 때문에 4명의 장교가 죽었지만, 히틀러는 멀쩡했다. 비밀경찰은 관련자를 다그쳐 암살 계획에 본훼퍼의 이름이 포함된 사실을 확인했다.
본훼퍼는 그 일에 관여하게 된 까닭에 이렇게 설명했다.
“죄 없는 구경꾼들의 무리를 향해서 차를 모는 미친 사람을 본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저 재앙을 기다리다가 상처 입은 사람을 위로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수 없다. 나는 그 운전자의 손에서 운전대를 뺏으려고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미친자에게 운전대 맡길 수 없다."
(본훼퍼 목사)
그는 프로센비르크(Flossenguerg) 수용소로 이감되었고, 히틀러는 1945년 4월 5일에 그의 사형을 허가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본훼퍼가 동료 죄수들을 상대로 간단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밀경찰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예배는 거기서 끝났다.
경찰들이 소리쳤다. “본훼퍼! 같이 갑시다.” 본훼퍼는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이것이 끝이지만, 내게는 생명의 시작입니다.” 다음날 아침, 본훼퍼는 교수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서 기도했다. 그 장면을 처음부터 남김없이 지켜본 수용소의 담당 의사는 나중에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처형당하는 사람이 옷을 벗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기도에 몰입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처형장에서도 여전히 기도를 올렸고, 용감하게 교수대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처형은 몇 초 만에 끝났다. 나는 50년 동안 직업을 수행하면서 그토록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면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권력이나 적대감과 맞서 싸우며 하나님과 인간들이 살아 있는 만남의 장소로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세상으로 들어간 교회의 모습을 꿈꾸고 실천했다.
본훼퍼는 1933년 7월 23일 주일에 자신의 핵심 사상을 이렇게 설교했다.
“교회여, 교회로 남으라. ...
고백하라. 고백하라. 고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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