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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51] 압살롬의 죽음 1(사무엘하 18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51] 압살롬의 죽음 1(사무엘하 18장)

En Hakkore 2024. 3. 4. 13:10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욥 20:5). 인간적이고 일시적인 기준으로도 그 정도라면, 영원의 빛에 비추어 본다면 얼마나 더 그러하겠는가!

아,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결코 끝나지 않는 미래" -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복된 승인하에서 즐기거나 그분의 두려운 저주하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이다-에 관한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중한 생각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만약 그것의 결과가 전능자의 영원한 찡그림이라면, 사람들의 미소와 칭찬이 우리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죄의 쾌락은 잠시뿐이나(히 11:25), 하나님의 의로운 손 안에 기쁨은 영원하다(시 16:11). 만약 인간이 온 세상을 얻고도 그의 영혼을 잃는다면 그것이 그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옛날의 에서처럼 하늘의 축복보다 팥죽 한 그릇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그 옛날의 아합처럼 일시적 쾌락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다윗의 사악한 아들의 경우를 통해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압살롬은 신중하게 계획을 세웠고, 그것을 열정적으로 그리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이행했다(삼하 15:1,2,5).

그는 야비하게도 자기 아버지의 질병을 이용해 왕의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다. 그는 왕국을 탐했고 이제 스스로 왕좌를 차지하기로 결심했다(15:10). 그는 예루살렘에서 병력을 모았고, 강력한 아히도벨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계략을 꾸미게 했다.

그는 냉혹하게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자기 아버지의 목숨을 희생시키기로 결심했고, 이제 직접 자기 아버지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17:24). 그의 승리는 보장된 듯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고 예측하지도 못한 채 자기 자신의 비극적인 그러나 그렇게 되어야 마땅한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결전을 위한 준비

"다윗은 자기와 함께 있는 백성을 점검하여 보고, 그들 위에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세웠다"(삼하 18:1, 표준새번역-역주).

아히도벨이 예측했듯이, 압살롬의 지체는 다윗에게 그의 병력을 크게 증대시킬 기회를 제공했다. 비록 아주 많은 이들이 반역자 편에 가담했음에도, 분명히 이스라엘 전역에는 여전히 다윗에게 충성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반역의 소식이 퍼져나가자, 의심할 것 없이,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도망중인 왕을 돕기 위해 무기를 들고 나섰다. 이 무렵에 그의 군대가 크게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이 구절의 맥락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제 다윗은 최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자신의 중원부대를 소집하고 정렬했다. 그는 얼마간 그의 삶의 초기의 열정을 지니고 칼을 찼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는 확고한 용기를 보여 주는 빛이 새어나왔다.

이때 다윗이 앞으로 있을 싸움의 결과가 어떠할지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분명해 보인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 맡겼고, 확신을 갖고서 임박한 싸움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삼하 15:31)라는 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은 틀림없이 그의 믿음을 크게 강화시켰을 것이다.👍

시편 42편과 43편(그것들은 이 시기에 쓰였다) 말미에 실려 있는 다윗의 말은 그가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해 품었던 소망을 보여 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그런 강력한 신앙이 게으름이나 부주의함을 낳지 않았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윗은 부지런히 그리고 지혜롭게 행동했다. 그는 자기 병사들을 점호하고, 최상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질서 있게 배치하고, 가장 경험 많은 장수들의 명령을 받게 했다. 성공을 얻기 위해 모든 적법하고 신중한 수단들을 활용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뻔뻔스러운 것이다.

"다윗이 그의 백성을 내보낼새 삼분의 일은 요압의 휘하에, 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휘하에 남기고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남기고"(삼하 18:2a).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은 얼마나 옳은가! 다윗의 군사적 전략은 오늘날의 그것과 동일한 방식을 따라 세워졌다. 다윗은 자기 병력을 중앙군과 좌우편 군대로 삼등분했다.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하니"(삼하 18:2b)

다윗은 용기 없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 사람들과 어떤 위험이라도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기꺼이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 구절에는 이런 말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용맹함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그가 싸움 현장에 있고자 했던 것은 자기가 결정한 순간에 분노한 군사들로부터 자신의 엇나간 아들을 구하지 못할까 염려했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여기서 단순히 왕의 고결함뿐 아니라 아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