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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엘리야의 생애 (The Life of Elijah)

[연재 28] The Life of Elijah

En Hakkore 2025. 6. 24. 15:53

과부의 곤경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왕상 17:8-9).

이 두 구절 사이의 관계를 신중하게 주목해 보라. 만약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이 구절의 영적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만약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강건해질려면,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규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배웠던 분명한 교훈들 중 하나였다. 그들은 순종의 길을 따를 때만 음식과 음료를 얻을 수 있었다(민 9:18-23 참고). 민수기의 그 말씀 안에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라는 말이 일곱 번이나 나오는 것에 주목하라.

그 옛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 자신의 어떤 계획도 갖도록 허락 받기 못했다. 주님이 그들을 위해 모든 것(그들이 떠나야 할 때와 야영해야 할 때를)을 결정하셨다. 만약 그들이 구름 기둥을 따라가기를 거부했다면, 그들은 만나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엘리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사역자들에게 그들이 섬기는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과 동일한 룰을 주신다. 그들은 자기들이 선포하는 것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엘리야는 그 자신의 어떤 의지도 가질 수 없었고, 자신이 그릿 시냇가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야 하는지, 혹은 언제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도 없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양식을 얻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얼마나 엄중한 진리인가! 순종의 길만이 복과 부요의 길이다.

아,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결핍에 대한 설명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우리의 영혼이 굶주리고 우리의 믿음이 약한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자주 자기를 주장하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가 그렇게 병들고 기쁨이 없는 것은 우리 안에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의 영혼의 건강과 기쁨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상관해야 하는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일반 신자들은 물론이고 설교자들 역시 이 원리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들이 거룩하신 분에게 사용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만약 엘리야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으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훗날 그가 갈멜 산 위에서 그토록 큰 확신을 갖고서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왕상  18:21)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섬김"(service) 의 상관어는 "순종"(obedience) 이다. 그 둘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결합되어 있다. 주님께 순종하기를 그치는 순간, 이미 우리는 더 이상 그분의 종이 아니다.

이런 연관성에 유념하면서 우리 주님이 갖고 계신 가장 위대한 칭호들 중 하나가 "여호와의 종" 이었음을 상기하자. 우리 중 아무도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위대한 목표를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에 쉬운 것이 아님을 솔직하게 인정하자. 그것은 우리에게 매일 자신을 부인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문을 견고하게 그분에게 고정시키고 마음을 다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때, 그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에는 큰 상이 따른다(시 19:11).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빚진 자가 되려 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종은 여전히 우리에게 인간적인 추론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그릿 시냇가에 앉아서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을 먹고 산다? 교만한 지성인이 어떻게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제 엘리야는 먼 이방 도시로 가서 그곳에서 그 자신도 굶주리고 있는 고독한 과부에게서 공궤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 사랑하는이여, 믿음의 길은 우리가 "상식" 이라고 부르는 것과 완전히 어긋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나와 동일한 영적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다면, 당신은 "자기의"(自己義) 라는 누더기를 벗어버리는 것보다 자신의 "이성"(理性)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Arthur W. Pink 엘리야의 생애 p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