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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엘리야의 생애 (The Life of Elijah)

[연재 10] The Life of Elijah(장문 중요)

En Hakkore 2025. 4. 16. 21:44

용기의 근원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무시무시한 전망이었다! 우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신 11:14; 렘 5:24)라는 표현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여러 달 동안의 건기(乾期)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건기에는 아무런 비도 내리지 않지만, 그래도 밤이 되면 촉촉한 이슬이 내려서 식물들을 자라나게 한다. 그러니 만약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여러 해 동안이나 그렇다면,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심판이 아닐 수 없으리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이름이 붙여질만큼 풍요롭고 기름졌던 땅이 순식간에 가뭄과 불모의 땅이 되어 기근과 역병과 죽음을 낳게 될 참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비를 거두어 가신다면, 아무도 그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렘 14:22).

이것은 우상들의 무능함과 그런 우상들에게 존경을 바치는 자들의 바보짓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그런 메시지를 전하면서 겪어야 했던 위험은 평범한 정신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주석가들이 놓치고 있는 내용에 관심을 기울일 경우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반명에 열왕기상 18장 1절에는 그 말의 속편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년에 여호오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다른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눅 4:25)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여분의 6개월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가능하다. 즉 엘리야가 아합을 찾아 갔을 때 이미 6개월 동안 가뭄이 지속되고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합이 엘리야로부터 그 무서운 가뭄이 3년 동안이나 계속되리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격노했을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 엘리야 앞에 놓인 그 꺼림칙한 과업은 평범한 결단과 용기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놀라운 용기의 비밀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떻게 그의 능력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까닭에 유대인 랍비 중 어떤 이들은 엘리야가 천사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말이다. 신약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약 5:17) 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사람" 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군주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이었음에도 그는 하늘의 문을 닫고 땅의 물줄기를 마르게 할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다.

우리는 그가 가뭄이 연장되리라고 예견하면서, 그리고 모든 것이 자신의 말대로 이루어지리라고 말하면서 지녔던 그 분명한 확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엘리야의 힘의 비밀과 관련해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그의 "기도"(prayer) 였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약 5:17).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엘리야는 아합에게 모습을 드러낸 후부터 열렬히 탄원을 시작했던 것이 아니라 그보다 6개월 전부터 그렇게 했다는 사실이다! 아멘. 그가 왕 앞에조차 그런 확신과 담대함을 지녔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혼자서 드렸던 기도가 그가 많은 사람 앞에서 보였던 힘의 원천이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었기에 사악한 군주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릭가 신중하게 주목할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그가 "간절히" 기도했다는 점이다. 그의 기도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형식적이고 열의 없는 기도가 아니라, 온 마음을 바쳐서 간절하게 그리고 충분하게 드리는 기도였다.

둘째는 그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knowledge of God) 이었다.✍️

이것은 아합에게 했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 이라는 말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에게 여호와는 살아 계신 분이었다. 그 당시 하나님에 대한 공개적인 시인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겉으로만 본다면, 이스라엘에서 여호와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엘리야는 대중의 의견과 행태에 휘둘리지 않았다. 하기야 그가 왜 그래야 하겠는가?

그는 그로 하여금 오래 전의 욥처럼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다"(욥 19:25)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경험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직접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이들의 불신앙과 무신론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엘리야의 용기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훗날 다니엘과 그의 세 명의 히브리인 친구들의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을 설명해 주는 것 역시 이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강하다(단 11:32). 그리고 그런 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셋째는, 그의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인식"(consciouness of the Divine presence) 이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엘리야는 여호와의 존재를 확신했을뿐 아니라 자신이 그분의 임재 안에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아합 앞에 섰을 때조차 그는 자신이 세상의 그 어떤 군주보다도 위대하시고 가장 고귀한 천사들조차 머리 숙여 경배하는 분 앞에 서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조차 그분 앞에서는 큰소리를 칠 수 없다(눅 1:29).

오, 이처럼 복된 확신이 우리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기를! 전능자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가 왜 세상의 벌레들 앞에서 떨어야 하겠는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살아 계시다. 그러므로 "내가 섬기는" 이라는 말은 엘리야가 그의 꺼림직한 과업을 수행할 때 의지했던 기초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혀 준다.

Arthur. Pink 엘리야의 생애 p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