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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348] 도피성(수 18장)
En Hakkore 2024. 11. 29. 20:45도피성이 구약의 네 권의 책에서 -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 다소 상세히 묘사된다는 사실은 그 중요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네 권의 복음서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주는 피난처의 원형이신 그분의 중요성을 잘 보여 준다.
성령께서 구약에서 주 예수님을 그림자와 모형으로 보여 주기를 얼마나 기뻐하셨는지를 염두에 두면, 그리고 도피성에 관한 갖가지 것들이 얼마나 면밀하고도 충격적으로 주님을 지시해 주는가를 간과하게 되면, 그것들이 그리스도를 그림자로 그려지도록 하나님의 계획하신 것이라고 결론지어야 마땅하다.
그 모형들을 이해하고 해석함에 있어서, 두 가지 위험 요소를 경계해야 하리라 본다.
첫째, 무절제한 상상에 휩쓸릴 위험과,
둘째, 지나치게 조심하는 나머지 상상을 제한시킬 위험이 그것이다.
오리겐의 상상에 가득 찬 알레고리식 이해의 위험에 빠져서도 안 되고, 반대로 고등 비평가들의 합리화하는 식의 이해도 삼가야겠다. 과거에는 첫 번째의 경우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신적인 요소를 부인하거나 뒤로 제쳐두어 정반대의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신약의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상 구약의 내용의 무언가 영적 의미를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은 전혀 합당치 않다는 식의 사고는 신약에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는 경우 - 예컨대 창세기 3:15처럼 - 를 제외하고는 구약에 전혀 예언이 없다는 주장만큼이나 터무니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주제에 대해서도, 필자의 판단으로는 최소한 서신서의 두 구절들의 도피성이 영적 의미를 갖는다는 견해를 확증해 준다고 본다.
첫째, 빌립보서 3:9인데, 거기서 사도는 히브리인으로서 자신이 누리는 모든 유익한 점들을 제시하고 이어서 그것들을 그의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에 피해 해로 이긴다고 진술한 다음, 그의 강한 바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의라"(빌 3:9).
교만한 바리새인이었던 그가 율법의 정죄를 받는 자기 자신의 의를 버리고 마치 살인자가 피의 보수자에게 도망했듯이 - 스스로 그리스도의 의를 취한다는 것(마치 그 도피자가 도피성 내에서 정의의 칼로부터 보호함을 입었던 것처럼)이다.
둘째, 본문은 히브리서 6:18인데, 거기서는 이런 구약의 그림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즉, 복음에서 피난처를 찾았다는 뜻이다. 이는 다윗의 다음과 같은 기도를 상기시켜준다.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시 143:9).
살인을 저지른 자는 죄인의 모습을 적절히 그려주는 표현이다. 죄인은 영혼을 죽인 자이기 때문이다. "네가 패망하였나니"(호 13:9).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성한 죄인을 그리는 것이라 하겠다.
전에는 그 사람이 평안과 위로 가운데 살았었으나, 비록 예기치 않았으나 다른 사람을 죽인 후에는 평안이 깨어져버렸다.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밖으로는 위험이 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가득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처지가 그 극히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죽은 사람의 시체가 널리 있다.
그에게 가득한 그 놀라움과 괴로움을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는 그 죽은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자신에게 복수하여 살해할 권리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자기의 집은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자기 손으로 지은 집에서는 안정을 찾을 수가 없다. 목숨을 위해 도피해야만 한다.
회심하지 않는 자들의 처지가 바로 이와 같다. 자신의 본성의 상태에서 거짓된 안정과 평안을 누린다. 그리고 이 세상의 것들과 죄가 주는 쾌락 가운데서 만족을 찾는다. 그러다가 전혀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성령께서 영적 죽음의 잠에서 그를 일깨우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 드리워져 있으며 그의 영혼이 영원한 죽음에 노출되어 있음을 각성하게 하신다.
오오. 그렇게 자신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한 처지에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그 영혼이 고뇌는 가히 말할 수가 없다. 자신이 안전 완전히 버려졌고 망한 처지에 있음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심령 속에서 지옥 불이 느껴지고, 죽지 않는 벌레가 양심에 느껴지니 견딜 수 없는 공포가 가득 찬다.
어쩌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여기서 피할까?
이런 질문들이 시급하게 제기된다. 교만한 이성은 전혀 답을 주지 못한다. 이성의 시각으로는 소망이 없어 보이고, 자신의 경우 자비를 기대할 범위를 넘어섰으니 말이다.
그런데 복음을 메시지가 눈에 들어온다. 전에도 여러 번 그 메시지를 들어왔으나 전혀 개인적으로 관심도 없었고 깊은 주목도 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인 자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그런 도피성에 대해 읽었거나 들었던 내용에 대해 거의 혹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특별한 관심도 끌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전혀 달라졌다 살인자가 되었으니 그 성들이야 말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곳이 되었고. 복수자에게서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베풀어져있으니 그 자신의 절박한 처지에 대해 하나님이 자비로이 배려하셨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게 된다. 죄인이 바로 그렇다.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길에 대해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지각하게 되기까지 그는 그런 것에 마음을 쓰지도 않고, 그것을 선명히 깨닫고자 애를 쓰지도 않으며, 자신의 깊은 필요를 채우는 일에 그런 지식을 사용하지도 않는 법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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