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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178] 타락과 징계(사무엘하 11장) 본문
신자 안에 있는 육
우리 앞에 놓인 비극적인 사건의 경우가 그러했다. 다윗의 무서운 행동은 우리에게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은 타락한 피조물에 불과할 뿐 아니라, 구속되어 거듭난 역시 가장 가증스러운 악에 떨어지지 쉽다는 사실을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렇다, 만약 하나님이 주권을 행사하며 개입하시지 않는다면, 신자들 편의부주의함은 주님의 영광을 크게 가리고 그 자신들에게는 두려울만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바로 그런 사실이 우리가 지금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를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중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을 완전하게 사로잡고 있는 육신의 욕망을 보게 된다. 또 탁월할 만큼 성결했던 성도가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마귀에 의해 눌리고, 유혹당하고, 결국 포로가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신자들 안에 있는 육(flesh)은 불신자들 안에 있는 그것과 다르지도 더 훌륭하지도 않다!
그렇다, 이스라엘의 그 감미로운 시인은 하나님과 오랫동안 긴밀한 교제를 즐겼음에도 여전히 그 안에 육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의 욕망을 죽이는 데 실패했다.
그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양심을 더럽히고, 자신의 영혼의 번영을 파괴하고, 자신에게(그의 남은 생애 내내) 재앙의 폭풍을 초래하고, 자신의 이름과 믿음을 이후의 모든 세대의 조롱과 모독이라는 화살의 과녁이 되게 했다.
하나님이 그에게 하셨던 모든 요구, 그가 누리고 있는 높은 지위에 따르는 모든 의무, 하나님의 자비가 제공했던 모든 울타리 등은 그 안에서 불타오르는 격한 욕망에 의해 사정없이 짓밟혔다.
곤고했던 시절에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 42:2)라고 외쳤던 자가 이제 금지된 것을 갈망하고 있다.
아,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참으로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을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하사뿐이다"(시 39:5).
그러나 우리는 다윗의 무서운 타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는 어째서 그렇게 쉽게 유혹에 빠졌던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그의 무서운 죄를 촉발했던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것들을 하나님의 드높은 주권의 견지에서 바라보는지, 아니면 인간의 책임의 견지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이중의 대답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것들을 후자의 견지에서 고찰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영혼을 위한 가장 실제적인 도움을 이끌어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와 그것을 촉발한 것 사이의 그리고 인간의 죄와 그것을 촉발한 것 사이의 관계를 추적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을 찾아 낼 수 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던"(창 12:10) 까닭은 그 이야기의 정황을 통해 밝혀진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까닭은 그가 주님을 "멀찍히 따라"(막 15:54) 가며 보았던 자신에 대한 확신에까지 추적될 수 있다. 그리고, 곧 살펴보겠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 다윗의 타락을 촉발했던 원인 역시 추적할 수 있다.
의무의 길을 벗어남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쌓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삼하 11:1-4).
나는 이 구절들을 설명하는 문제와 관련해 매튜 헨리가 취했던 방식보다 나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 방식이란 첫째, 그 죄의 원인, 둘째, 그 죄의 진행 단계, 셋째, 그 죄의 악한 모습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다윗의 타락의 원인 혹은 그것을 촉발했던 요소는 위의 구절들에서 분명하게 암시되고 있다. 그 구절들에서 나타나는 시간에 대한 언급에 주목해 보자.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삼하 11:1a).
이것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어쩔 수없이 활동을 접어야 했던 시간이 끝나고 활동하기 좋은 날이 돌아왔다. 그리고 암몬에 대한 군사 활동이 재개되었다. 요압과 온 이스라엘 군대가 싸우러 나갔다.
"[그러나, But, KJV. 한글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다-역주]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1b절).
이것은 성령께서 왕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으심을 보여 주는 아주 불길한 "그러나" 이다. 바로 이 구절 안에 이후의 사건들을 설명해 줄 첫 번째 열쇠가 들어 있다. 우리는 이 구절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되도록, 또한 가장 단순한 말로 축소시킨 경고가 되도록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다윗이 의무의 길을 따르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때 왕이 있어야 할 자리가 이스라엘의 적들을 타도하기 위해 그의 전사들을 이끄는 선봉이었음은 분명하다 - 사실 그동안 그는 줄곧 그 자리를 지켜왔다(삼하 10:7을 보라). 만약 그때 그가 여호와를 위한 싸움을 하러 나갔다면, 그는 곧 그에게 닥쳐올 시험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 왕이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것은 우리의 눈에는 사소한 문제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 상황을 적절한 견지에서 바라보는 데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의무의 자리"(the post of obligation)를 저버림으로써 그 자리를 아주 천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무의 길을 벗어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지할 수 없다. 마귀가 우리 주님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요구했을 때 그분이 하셨던 답변의 힘이 거기에 있었다. 그런 일은 그분의 의무의 길과 무관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마 4:7).
다윗은 칼을 차야 했을 때 느슨해졌다. 그는 전장의 역경보다 왕궁의 향락을 더 좋아했다. 아, 우리가 편안한 길을 따르기는 얼마나 쉬운가!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는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은혜가 필요하다.
아, 다윗은 이전에 겪었던 유사한 실패를 통해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서 쉼을 얻고자 했을 때 죄에 빠지고 말았다(삼상 21:13). 그가 예루살렘에서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는 지금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중요한 원리가 나온다. 다윗은 그의 갑옷을 벗었고, 그로 인해 적이 그를 공격할 때 보호를 얻지 못했다.
아, 사랑하는이여, 이 세상은 우리가 쉴 곳이 아니다. 오히려 이 세상은 믿는 자들이 싸움을 벌여야 하는 곳이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는 권면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 싸움에서 실패할 것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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