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영적인 구원 17] 중생의 효과 본문
4. 행위의 교정(2)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죄와 은혜의 양면성을 가진 주체자라는 사실에 대하여 분명하고도 성경적인 견해를 확립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롬 6:14). 중생한 자는 죄의 절대적인 주관(主管)에서는 구원받았을지라도, 아직 죄, 곧 '육'의 원리가 근절된 것은 아니다. 로마서 6:12의 "그러므로 너릐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라"에서도 이 점은 명백히 나타난다.
만일 우리 속에 우리를 주관하려 애쓰는 죄가 없고, 복종을 요구하는 정욕이 없다면 그 권고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항상 죄의 길에 있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게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났음이라"(요일 3:9).
여기에서는 죄를 습관적으로 그리고 규칙적으로 범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전 15:34)는 말씀에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죄와 은혜의 양면성을 가진 주체로서 바울이 체험한 로마서 7장에 기록되어 있다. 14-24절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은혜에 의해 바울 안의 '육신'이 제거되거나 정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내면적인 갈등을 생각해 본다면 그 내용이 로마서 7장에 가장 예리하고 충실하게 묘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육신'이 선하지 않음을 알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고 외친다. 그가 그리스도의 형상에 좀더 완전하게 일치하고자 갈망하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며, 은혜의 감화와 지배 아래 거하고,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예민하게 느낀다) 자기가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자 하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음을 안다.
그렇다. 말씀을 읽고 기도와 명상의 체험에 의해서 그는 그의 타락한 본성이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으며, 그가 선을 행할 때조차 악이 그와 함께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그가 크게 슬퍼하고 있는 일이며, 그가 "탄식"(롬 8:23)하고, 이 죽음의 몸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이유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은혜 안에서 자라날 수 없다"는 말인가? 물론 자라날 수 있다. 그러나 '은혜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이 증가했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내가 하나님의 빛 안에서 행하면 할수록 내 속에 있는 '육체'의 비열함을 명백히 깨닫게 되며, 타고난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항상 깊은 혐오감을 갖게 될 것이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는 말씀은 불신자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 아이의 고백이 아니라 지극히 많은 빛을 받은 성도의 고백이다. 이 비참한 상태로부터 구조되고, 새롭게 된 마은이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려 그리스도께 향하고 우리를 위해 이루신 그의 완전한 사역을 바라보는 일이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자기 만족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평가를 받게 된다.
Arthur W. Pink 영적인 구원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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