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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목회자 되는 것 신중하게 결정하세요

En Hakkore 2026. 5. 7. 13:26

지금 목회의 세계는 매우 열악한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글을 올리는 것은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멀쩡한 직장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로 그만 두고 신학교에 갈 선택을 하지 말라는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신학과 목회는 직장이 있어도 가능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 중에는 암암리 부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자들은 신문배달에서부터 어떤 자들은 부동산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물론 영업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특정한 직업이 없기에 대부분 부업과 같이 일하는 경우이고 소득도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목회와 가정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기에 안 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목회를 하다가 모두 잘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수가 미 자립교회이며 보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작은 수입으로 어려운 생계를 이끌고 나가다가 어떤 이들은(상당수) 목회를 포기하고 세상의 직업을 가지고 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헌법적인 조항(교회의 법으로 매우 불합리한 것임)이 있고 나아가서 그러한 조항에 의해서 신학에만 전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일을 못하는 경우이기에 목회자들은 신학에만 전공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의 전선에 대부분 뛰어 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목회의 현실은 냉정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목회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평생을 고통으로 살아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현실을 알리는 것은 무리한 선택을 피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올립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심각하고 중대한 결정이 목회의 길입니다. 현재 목회자들의 수는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서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성도들의 부담도 커지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글을 올립니다. 여러분 목회는 평생을 좌우합니다.

한 학생이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해서 수십 년을 공부해서 결정합니다. 목회도 이러한 결정과 같은 것입니다. 현실은 그리 좋은 목회의 환경이 아니라는 점도 기억을 해야 됩니다. 지금도 목회자들은 줄지 않고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후배 신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목회자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부터 고쳐야 합니다. 오늘날 인재는 넘쳐나 이미 한계선을 넘어섰습니다. 내가 아니라도 이미 넉넉합니다. 오히려 과잉경쟁으로 신실한 자들이 감추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인맥과 학벌로 결정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극소수의 인간형이 대우 받는 시대입니다. 사람의 성격은 다양하고 사람의 성향도 다양하지만 목회자를 원하는 자들은 대부분 옥한0, 장동0, 등등 혹은 인기를 얻을 만한 자들이 사실상 성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상 성공할 자들이 성공합니다.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든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만한 사람이든지, 혹은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든지 등등 이러한 외적인 요소가 목회의 결정적인 성공의 비결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자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목사의 대물림도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외부적인 유리한 조건이 아니면 대부분은 아래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수는 개척을 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뛰어들지만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개척으로 실패하면 그는 더 이상 갈대가 없습니다. 가야 될 교회는 없고 그는 결국 세상의 직업을 갖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학만 전공했지 다른 직업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결국 성직자로 있으면서(보조받으면서) 세상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수는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영원학원을 운영하든지 혹은 아이들 공부방을 운영하든지 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운영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목사라면 불법입니다.

어떤 이는 결국 아무것도 안 남았기 때문에 선교사로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목회를 하지만 결국은 목회의 세계는 매우 열악하고 매우 치열한 세계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성도들이 목사를 우습게보면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생명을 걸고 걸어간 결정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목회자를 존중하고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큰 교회 목사이든 작은 교회 목사이든지 모두 하나님의 일꾼으로 여겨야 합니다.

목사의 길로 들어서면 다른 선택이 여지가 없기에 그들의 고민은 더 커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성도들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시대적으로 불리한 교회의 현실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그들을 들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아셨으면 합니다.

목사의 길로 들어서면 다른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전공으로 배운 신학이 대부분이고 또 목회를 하다가 중단하고 다른 길로 들어서려면 이미 자신의 나이는 사회에서 원하는 나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회로 상처받고 사회에서 소외 받게 하는 현행 목회의 제도를 개선해야 된다고 봅니다.

목회자 양성은 꼭 필요한 만큼만 해야 된다고 봅니다.(합리적으로) 특별히 목회자가 되려는 자들은 세상에서 언제든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자들로 선발해야 될 것으로 봅니다. 그래야 후일에 다른 길로 걸어가도 생계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신학생들 중에서 목회자로 걸어가면 모두 성공한다고 보는 것이 장미 빛 환상이라는 것이 깨지는 것은 매우 초기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현실과 타협하는 목회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은 영적인 부작으로 봅니다. 그들이 오늘날 목회자가 소신 있게 목회하지 목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참으로 걱정 없는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좋은 토양을 마련해야 된다고 봅니다. 지금과 같이 목회자가 생계에 시달리거나 혹은 한 교회에 목숨을 걸어야 되는 현실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습니다.

지금이라도 선택을 신중하게 하는 켐페인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우리가 알지 못한 여러 가지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본인은 멀쩡한 직장을 두고 신학교에 가려는 몇몇의 사람들을 막았습니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직장인데 기도원에서 나름대로 신앙의 충격을 받고 온 것 때문에 목회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목회의 세계와 현실을 설명하자 그들은 모두 그 생각을 포기하고 자신이 있는 곳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그들에게 평생 한번의 선택을 하는 것을 알게 한 것입니다. 목회의 선택은 당신의 평생을 좌우합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갈 것입니다.

목회의 세계는 성공할 팔자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거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시대에는 좋은 장소에 개척교회 세우면 목사의 능력과 상관없이 교회가 부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미 교회들이 정착을 했으며 목사들은 그러한 교회에 들어가야 되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수와 목회자의 수가 현저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렇게 오늘날은 어려움을 격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와 달라진 시대입니다.

그래서 개척시대가 아니라고까지 말합니다.
물론 개척도 필요하지만 신중한 결정이 요구됩니다.

오늘날 목회의 세계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극소수입니다. 이미 앞서 말한 대로 기본적인 우수한 조건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적인 조건이 없으면 개인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유해야 합니다.

장경동 목사님과 같은 자들은 성공할 것입니다. 문제는 모두가 그 목사님과 같이 사람들을 사로잡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한발 더 나아가서 목회자들을 선별해서 초빙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인들이 원하는 특별한 목회자들은 소수이기에 나머지는 모두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을 밀어내고 성공해야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목회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해야 된다고 봅니까? 결국 현실을 직시해야 됩니다.

큰 교회는 대부분 이름 있고 또 카리스마 있는 자들이 있지만 앞으로는 카리스마 목사보다 교인들이 요구하는 목사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러한 목회자들은 결코 다수가 아닙니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자들이 선택됩니다. 천성적으로 성격이 급하거나 별로 인기도 없고 평범한 자 혹은 교인들에게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자들은 낙오자로 결정될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을 본인은 인본주의 결정이라고 봅니다.

사실 그렇게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능력이 있어서 선택 됐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오늘날 교회의 요구에 의해서 되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좋은 외모와 성격을 주셨기 때문입니다.(부모를 통해서) 그러나 이러한 외모로 선택하는 교회는 결국 단편적인 교회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경적인 것은 이러한 외모보다 그 사람의 믿음이며 그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겠다는 것이 먼저 앞서야 됩니다. 물론 교회를 개혁하려는 의지도 당연히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성경적인 기준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준은 오늘날 인기 있는 목사들로 교회들이 점점 채워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그럴 것입니다.

연예인과 같은 인기목사들이 나타나고 그들은 모든 교회의 교인들로 존경이 되게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경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보다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현상입니다. 목사나 감독은 인기가 아닌 교회의 감독입니다. 사도들은 모두가 사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교인들로 높고 낮음을 말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도들의 성격대로 그들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들의 성격이 다르고 그들의 취향이 다르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다양성을 통해서 일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그들의 성격을 바꾸어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베드로와 같은 목사들로 성공해서 오늘의 교회가 되었다면 앞으로는 요한과 같은 사람들을 원할 것입니다. 교회의 목사들을 모두 요한과 같은 자들로 모두 만들려는 것은 인본주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요한과 같이 교인들에게 부드럽고 인기 있는 목사들로 만들면 교회의 다양성은 스스로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모든 목사의 성격과 그들의 능력까지도 유전적으로 창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사용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나 하나님은 그 사람의 외모, 그 사람의 성격, 그 사람의 경제, 그 사람의 말하는 실력보다 그들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외적인 것을 두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목사의 위치를 두고 높다 낮다고 말하는 것보다 그가 하나님의 성직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직은 우리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목사이든지 하나님의 같은 일꾼으로 여기는 지혜가 요구됩니다. 우리의 평가로 높고 낮게 목사를 만들면 이것은 하나님의 성직을 우리가 논하는 것이 됩니다. 모두 같은 주의 종으로 섬기는 자들이 됐으면 합니다.

글이 길어진 것 같습니다. 결론으로 주의 길로 걸어가는 것보다 선교사가 더 시급합니다.
목회자로 결정을 하려고 한다면 한국에서의 목회는 자체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특히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고 모든 교회가 하나 되어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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