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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342] 기업의 완전한 소유와 나태함(수 17-19)
En Hakkore 2024. 11. 28. 21:57넷째로. 잇사갈 곧 잇사갈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수 19:17).
이 지파는 모세의 축복에서 스불론 지파옥ᆞ 하나가 되었으므로(신 33:18,19), 그에 대해 별도로 논평할 필요가 적다. "장막"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바다로 나가거나 땅을 경작하는 자들이 아니라 양치는 자들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들이 받은 기업은 비옥한 이스르엘 평야와 인근의 산과 골짜기들로서 갈멜산으로부터 요단 강까지, 그리고 다볼산까지 이어졌고, 훗날 그 지역은 갈릴리 저지대로 알려졌다.
수넴(왕상 4:8, 등)이 그 성읍 중의 하나였고, 낙봇의 포도원이 그 경내에 있었다.
헨리(Henry)는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에서 그분의 주권과 지혜가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그는 사람의 거주의 한계를 정하실뿐 아니라 공공의 유익을 위해 갖가지 직업들을 정해 주심으로, 그 몸의 각 지체가 전체를 섬기도록 상황과 자질을 부여하신다. 일부 사람들은 성읍에서 살도록 하시고, 일부는 시골에서, 또 다른 일부는 항구에서 살게 하신다. 일부 사람들은 글을 쓰는 재주를 부여 받고, 일부는 상업에, 또 다른 이들은 각종 물건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게 하신다.
"만일 온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고전 12:17).
다섯째로 아셀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수 19:24).
이 부분을 다루면서 여기에 언급되는 지파들의 순서가 서열이 아니고, 창세기에 나타나는 그 이름들의 의미에 따르는 영적인 의미의 순서라는 점을 지적했었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35:18)을 뜻하며, 시므온은 "들으심"(29:33)을 스불론은 "거주"(30:20)을, 잇사갈은 "삯" 혹은 "상급"(30:18)을 아셀은 "복됨"(30:23)을 납달리는 "씨름함(30:8)을 단은 "판단함"(30:16)을 뜻한다.
이를 종합하면, 오른손(존귀와 권세의 지위)의 아들은 듣는 자(중생이 믿음에 선행한다!)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더 이상 바다 물결처럼 흔들리지 않는다)이며, 그는 복되고 상급이 크다. 그런 자는 악의 권세를 상대로 싸우는(그것의 굴복하지 않고) 특징을 보이며, 자기 자신을 철저히 관리한다.
영적 아셀의 복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19:25, 26에 언급된 성읍들의 의미들(두 번째 "할리" 는 의미가 불분명하므로 제외하고)은 다음과 같다. "몫, 높음, 바쳐짐, 왕의 상수리나무(힘과 견고함), 거주지, 우울함(죄를 슬퍼함), 비옥한 곳, 유리 강"(계 22:1).
"여섯째로 납달리 자손을 위하여 납달리 자손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수 19:32).
이는 신약과 연결됨으로 우리에게 가장 흥미롭다. 그 경계는 스불론의 경계와 닿아 있었으나(마 4:13), 이 두 지파는 각기 고유한 관심사를 지녔다. 야곱은 납달리를 "놓인 암사슴"에 비유했고, 그가 "아름다운 소리를 발"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창 49:21). 반면에 모세는 그를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자"로 묘사한다(신 33:23).
시편 22편의 표제에서 우리 주님이 "새벽 암사슴"(개역 개정은 히브리어 원문을 음역하여 "아얠렛샤할"로 읽음. 역주)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그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민첩하시기 때문이다.
가버나움과 벳세다 등의 성읍이 납달리의 경계에 위치하였고, 주의 축복을 가득 받았다. 거기서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거의 대부분의 설교와 가르침을 주셨으니 말이다.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수 19:40).
창세기 30:1-6은 단의 비천한 출신을 기록하고 있다. 이 지파는 이스라엘이 행진할 때에 회중의 맨 끝에 위치했던 것처럼, 기업도 맨 나중에 받았다. 야곱은 단을 뱀에 비했고, 모세는 "사자의 새끼"에 비했다.
삼손이 이 지파 출신이었고. 그는 그 두 가지 성격을 다 지니고 있었다. 단은 이스라엘 지파들 중 가장 먼저 우상숭배에 빠졌고(삿 18:30), 또한 배도한 왕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는 것을 볼 때에(왕상 12:28, 29, 참조. 왕하 10:29), 여러 세기 동안 그런 끔찍한 상태 속에 있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수 19:49-50).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중 가장 위대하고 담대한 인물이요, 가나안 정복 과정을 통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인데도, 자기 자신의 몫을 구하지 않고 모든 지파가 제 몫을 다 받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정말 복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사로운 유익보다 공적인 선을 우선시했고, 자기의 이익이 아니라 그들의 유익을 구한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도 이 땅에서 그런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그는 사치가 아니라 빈곤 중에 사셨고, 우리에게 안식을 베푸시며 사셨으나, 정작 그 자신은 머리 둘 곳도 없으셨다"(헨리. Henry)
여호수아는 자기의 몫을 권리로 여겨 강제로 탈취하지 않았고, 그의 위대한 원형이신 그리스도처럼 그것을 "구하"였다(시 2:8).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 안에 내주하시듯이, 여호수아도 그의 성을 세운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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