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The Life of David 63] 아비가일의 개입(사무엘상 25장) 본문
[The Life of David 63] 아비가일의 개입(사무엘상 25장)
En Hakkore 2024. 2. 19. 11:15앞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다윗을 그가 이전에 겪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성격의, 또한 아주 다른 곳으로부터 오는 시험에 처하게 하셨던 것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그에게 가시가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거기에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이 그에게 냉담할 정도의 무관심을 보였던 것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예기치 않게도 자기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식량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던 어느 농부에게 거절을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야비한 사람은 다윗의 전령들을 모욕하고 조롱하며 내쫓았다. 그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동안 다윗은 많은 일을 견뎠고 또한 견디고 있었다. 그는 사울의 극심한 적대감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둔감한 무관심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 둘 모두 대단한(great), 그리고 소위 기품 있는(dignified) 적이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그들에게 박해를 받는 것은 상대적으로 명예로운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발처럼 비루한 자의 비난을 견디는 것은 그것과는 아주 다른 일이었다. 다윗은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삼상 25:21)하고 말했다"(B. W. Newton)
다윗에게 그 시험을 더욱 통절한 것으로 만든 것은 전에 자신이 나발에게 훌륭하고 친절하게 대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전 어느때인가 다윗은 그 지역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자기 사람들이 나발의 양떼를 약탈하는 것을 금했을 뿐 아니라, 그 양떼가 블레셋의 방랑하는 무리들에게 약탈당하지 않도록 보호막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 부유한 양떼 주인이 다윗의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약간의 식량을 제공하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을 조롱했다. 배은망덕은 혈과 육을 지닌 자에게 늘 시험거리가 되지만, 특히 그것이 조악할 정도로 부당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종종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즉 그들이 아주 "적절하지 않다"고, 또 다시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부당하다"고 느끼는 대우를 받게 하심으로써 시험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째서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우리에게 자신이 고백하는 대로 행동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다!
교만한 자가 받은 상처
이 시험에 대한 다윗의 반응은 우리에게 교훈이 되도록, 즉 우리가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간절한 기도의 제목으로 삼게 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삼상 25:13).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은 고난의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교육을 받았음에도 아직도 인내를 배우지 못한 것인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당하는 모든 고통과 비난은, 그것이 군주로부터 오는 비천한 시골뜨기로부터 오든, 동일하게 명예로운 것임을 잊었다. 그의 오만한 정신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사울에게 손을 대기를 거부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칼을 뽑으려 하지 않았던 그가,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적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위해서 여호와의 적들과 싸우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가 이제 자신의 소명을 잊은 채 자신을 모욕한 나발이 그의 피로 속죄해야 하리라고 선언했던 것이다"(B. W. Newton).
그러면 우리는 그의 이런 실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다윗은 특별히 어떤 점에서 실패했던 것인가? 그는 이차적인 것에 불과한 인간이라는 수단에 과도하게 집착함으로써 그의 눈을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두었다. 자기 사람들이 실망스러운 소식을 듣고 돌아왔을 때, 그는 마땅히 욥처럼 말해야 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 2:10).
아, 우리가 다윗이 말해야 했던 것을 우리의 입으로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그와 유사한 시험을 당할 때 다윗이 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하게 행동하는가? 아, 우리 모두는 부끄러워하며 머리를 숙여야 할 이유를 갖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돌에 맞아야 마땅한 내가 그 사랑스러운 시편 기자에게 돌을 던질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성령은 그의 실패를 충실하게 기록해 놓으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유익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그의 실패의 원인을 추적하고,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은혜를 간구하는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다윗은 고난의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교육을 받았음에도 아직도 인내를 배우지 못한 것인가?" 하고 물었다. 이 질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또다른 질문을 하게 만든다.
"인내란 무엇인가?" 소극적 의미에서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유순하게 받아들이면서 진심으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 의미에서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계속해서 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서 그분의 손길을 발견하는 습관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차적인 것들과 적의 하찮은 대리자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한, 우리는 평화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우리의 마음을 위한 유일하게 참된 피난처가 있다. 그것은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시 37:7)이며,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롬 11:36)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며, 모든 개별적인 사건들 속에서 그분이 주시는 교훈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3-24)라는 말씀이 진리임을 아는 것은 복되다. 그렇다, 비록 우리는 자주 비틀거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신다.
우리가 모든 일에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참된 갈망을 품을 때, 주님은 우리가 잘못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진지하게 하나님을 향하고 있을 때, 그분은 사탄이 우리를 제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을 따라서 대답하는 것"(잠 26:4)은 마귀가 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윗은 일시적으로 마귀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주님의 눈이 시험 당하고 있는 그분의 종이 살피고 계셨다. 그리고 이제 그분은 은혜롭게 한 사람을 움직여 그가 나발에게 복수하려는 계획을 제어하셨다. 그분의 섭리의 역사를 찬송하자!💕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271
'강해시리즈 > 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Life of David 65] 아비가일의 개입(사무엘상 25장) (0) | 2024.02.19 |
---|---|
[The Life of David 64] 아비가일의 개입(사무엘상 25장) (0) | 2024.02.19 |
[The Life of David 62] 나발에게 모욕당함(사무엘상 25장) (0) | 2024.02.19 |
[The Life of David 61] 나발에게 모욕당함(사무엘상 25장) (0) | 2024.02.19 |
[The Life of David 60] 나발에게 모욕당함(사무엘상 25장) (0) | 2024.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