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구원 28] 회개
8. 회개의 성격(3)
회개는 죄의 확신, 또는 앞으로 올 진노에 대한 공포 이상의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 2:37,38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베드로의 마음을 찌르는 설교에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죄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깨닫게 되어 지옥에 던져질 것이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마음에 찔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부르짖을 때, 베드로는 "회개하라"고 말하였다.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겐 이런 요구는 아무 필요도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절한 권고였다. 그들의 "마음의 찔린 것"은 율법적인 공포였고 반면에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복음적으로 자아에 대해 심판하며 하나님의 은총과 선함이란 의미에서 죄를 슬퍼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37,38을 열심히 기도하며 주의깊게 숙고해 봄으로써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조 가운데에 나타나 있는 잘못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베드로의 청중은 자신의 두려운 범죄로 인하여 크게 놀랐고 영원한 진노를 두려워했으며, 마치 칼이 심장을 꿰뚫은 것처럼 마음에 찔림을 받고 번민 속에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부르짖었다.
사도는 "믿기만 하시오, 당신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초칼빈주의자들(Hyper-Calvinst)의 치명적인 타성을 두둔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오늘날의 '쓸모없는 많은 영혼의 의사들'의 충고와 같이 '당신들의 죄가 다 말소되었음을 믿으시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은 이와는 크게 달라,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당신이 받을 책망은 다 받으시오. 하나님께 속한 모든 진리를 인정하시오, 속이려 하지 말고 당신의 두려운 사악함을 고백하시오. 당신의 할례받지 못한 마음이 하나님 앞에 겸손케 되도록 하시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보시오. 당신이 그리스도의 중보와 공로를 믿는다는 그 증거로서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시오. 그러면 그것이 당신의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외적인 표시가 될 것이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람의 경우에서 그 성격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눈을 열어 하나님의 품성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법의 아름다움, 죄의 무한한 악, 무한한 속죄의 필요성, 그리고 자신이 그리스도를 필요로 함을 본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은 최고의 충만하신 선이며 자신에게 돌아오는 모든 죄인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아들일 준비가 되셨음을 깨닫는다.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모두 회개하고 자신의 최고의 주이시며 최상의 선인 하나님께 돌아오고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이며 하나님께서 비추어 주신 유일한 길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돌아온다. 좀더 분명한 빛 속에서는 하나님의 품성과 율법의 영광이 보이고 마찬가지로 죄의 무한한 악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무한한 속죄와 완전한 의에 대한 필요성도 보일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자연적으로 그리고 분리될 수 없게 관련되어지는 것이다. 정말 그 둘은 필연적으로 서로 속에 함축되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 율법의 영광 그리고 속죄의 영광에 비추어 회개하는 사람은 그의 회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비의 자유로운 은혜만을 바랄 것이다. 또 하나님과 율법과 속죄의 영광에 비추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비의 자유로운 은혜를 바라는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 불평하였던 자신의 모든 책망을 받아들이고 율법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나타난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심판과 정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회개하며 돌아서는 자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말씀은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행 3:19)라는 말씀과 똑같은(둘이 뜻을 다 포함하고 있는)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믿음은 그 자체의 본질상 회개를 함축하고 그들의 회개는 그 본질상 믿음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그들의 믿음만을, 또 때로는 회개만을, 또 때로는 둘 다를 함께 언급한다. 그러나 언제나 똑같은 것을 의미한다. 사도들의 견지에서 회개와 믿음은 각각 속에 상호적으로 함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셉 벨라미, 1750)
Arthur W. Pink 영적인 구원 p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