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구원 22] 회개
6. 서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위험한 시대'의 특징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것 중의 하나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는 것이다(딤후 3:13). 이 말씀은 영적으로 미혹하는 자와 속이는 자들에게 더 깊은 관련이 있다.
매혹적인 성격을 가진 자들과 교계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 자들과 의견상으로만 성경을 깊이 존경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은 치명적인 오류를 가지고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 진화론자들과 고등비평가들과 현대주의자들은 그럴듯한 거짓말로써 많은 우리 젊은이들을 속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통의 수호자라고 자처하며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뽐내는 자들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끝없는 파멸로 이끄는 해독을 끼치고 있다.
우리가 방금 지적한 바와 같은 비난은 참으로 심각한 것이긴 하지만 증거가 없이는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증거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우리 이전의 모든 세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세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기 전에 충심으로의 깊으 회개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구원을 얻는 데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회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눅 13:3).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을 회개를 주셨도다"(행 11:18).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고후 7:10).
이보다 더 뚜렷한 표현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과 아직 인용되어지지 않은 말씀들을 불 때에 우리는 소경이 이도하는 것과 같이 영혼을 기만하는 자들, 곧 회개가 구원을 이르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는 자들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적 교훈에서나 소위 '정통' 설교에서조차도 별로 회개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으며 신약 성경에서도 회개에 대해서는 많이 나타나 있지는 않은데, 나타나 있는 것중 두드러진 내용을 면밀히 조사해보면 지극히 중요하고도 엄숙한 '시대의 여러 가지 징조'들 중의 하나를 밝혀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대주의적 진리의 교사'라고 자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의 대표적인 자들 중 회개는 과거시대에 속한 것이고 전 '유대인들'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들은 이 시대에서도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그 죄인의 회개를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이와같이 그들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다"는 사도행전 17:30의 말씀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자들이 성경을 지극히 열심히 연구하는 자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우리는 단지 유감스럽게도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 3:7)는 말씀이 그들에게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심함으로써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싫어하는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진리를 조화있게 이해하지 못한 자들이며 다음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사 55:7). 그것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이 의로운 요구에 따라 살면 칭찬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거룩하신 자의 요구가 그에게 대항하여 죄를 범한 자들에게 권고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러나 오만한 반역자는 그 권고를 조금도 들으려 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현재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인간에게는 싫은 일이지만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죄인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데 뜻을 두고 있는 현대의 책자들을 조사해 보면 이러한 일이 지극히 만연되어 있음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즉 그 책들 중의 대부분에는 회개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슬프게도 과거의 우리의 책들은 이 점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하고 있었다.
죄인이 구원바들 수 있기 이전에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한다고 해도 참으로 회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단지 지극히 피상적이며 표면적인 견해만을 가지고 생각할 뿐이다. 여러 집단 속에서 어떤 사람이 눈물을 흘리거나 그가 추구해 왔던 악한 길에 대하여 슬픔을 나타낸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하시는 사역이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불안한 양심의 가책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되는 죄에 대한 회개와는 다르다. 에서는 울며 비통해 하였으나 그는 중생되지 아니했다 베릭스는 바울의 설교를 듣고서 감동을 받았지만 성경에는 그가 천국에 들어갔다고 하는 암시는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점에서 속고 있다. 사람들을 속이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목사가 오늘날에는 거의 없다.
자기의 영혼을 소중히 생각하고 자기의 영원한 운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성경의 빛 가운데에서 자기의 회개를 주의깊게 조사해 보아야 할 것이며 인간의 것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또는 자연적인 것인가 초자연적인 것인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후회하다'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구절에서 그 말의 의미와 범위에 대한 해잡을 앋을 수 있다. 창세기 6:6에서 우리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라는 말씀을 볼 수 있다. 무한한 지혜와 변치 않는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은 절대로 그 마음을 변치 않으시기 때문에 이 말씀은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점에 있어서는 다음의 말씀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민 33:1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캐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19).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이와 같은 분명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창세기 6:6(그밖에 이와 유사한 구절 속에서)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사 우리들의 표현 양식에 따라 말씀하시고 인간의 방법에 따라서 자신을 나타내셨다고 볼 수 있다. 즉, 시편 78:65,87:6과 이사야 59:16등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런 방법으로 표현한 예이다.
창세기 6:6 말씀의 배경과 그 말씀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첫째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을 보시고"라는 창세기 6:5 말씀에서 후회의 이유가 죄때문인 것을 깨닫게 된다. 이와같이 후회는 죄로 심히 죄됨을 깨닫는 것이다
둘째로 후회의 성질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땅 위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셨다"는 이 말씀 속에는 현존하고 있는 통턴할 상태를 보고서 새로운 결심이 굳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째로 참된 후회는 그리하여 마음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나타나며 죄에 대한 진정한 슬픔이 수반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근심하셨던"(참조, 고후 7:10) 것이다.
네째로,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쓸어버리되"라는 말씀에서, 후회의 결과나 그 열매는 유감으로 생각되는 것을 원상태로 돌리려는(버리려 하거나 가능한 한 고쳐보려는) 결심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요소는 성령의 자비롭고 초자연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마음 속에서 생겨났던 회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Arthur W. Pink 영적인 구원 p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