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anings in Joshua 109] 헌신의 상징들(여호수아 5:1-15)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렘 4:14).
이러한 영적 할례 혹은 마음을 씻는 일은 중생의 소극적인 면, 혹은 다른 저술가들이 더 적절히 표현했듯이 "결핍"의 면에 해당된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무언가의 결핍이나 보류나 제거를 통해 생겨나는 결과를 의미하는데, 이를 정확히 규정할 수 있는 영어 단어가 없으나(한국어도 마찬가지이다, 역주). "결핍의 면"(the privative side)이 가장 근접한 표현이라 여겨진다.
이것은 사람이 은혜라는 기적의 주체가 될 때에 그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위대한 변화"의 일면 혹은 일부분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최근에 아주 상세히 다룬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길게 다룰 필요가 적다. 하지만 "중생"이라는 넓은 의미의 용어 속에 영적 상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라 여겨진다
"위대한 변화"를 다루는 논고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너무나도 많은 저술가들이 중생을 다루면서 오로지 한 가지 면-새 생명 혹은 새 "본성"이 전해지는 것-에만 주의를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생을 한 각도에서만. 그것도 적극적인 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이다.
중생에는 소극적인 혹은 결핍의 면도 있다. 출산에는 괴로움과 고통이 있다. 어쩌면, 칭의에 다음 두 가지 부분이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우리가 지금 말씀하는 이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핍의 면과 적극적인 면, 즉 무언가 제거되는 것과 베풀어지는 것, 칭의의 결핍의 면은 모든 죄에 대한 책임과 형벌이 취소되고 제거된다. 씻음(용서)이란 "떠나 보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칭의의 적극적인 면은 믿는 죄인의 계좌에게로 그리스도의 순종의 공효를 전가시키는 것이다.
"의롭게 하다"라는 한 개인이 (순전할 뿐 아니라)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스가랴 3:4의 사랑스러운 모형 속에 함께 등장한다.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는 결핍의 면이요, "네게 아름다운 옷"(눅 15장에서는 "제일 좋은 옷")을 입히리라"는 적극적인 면이다.
자, 중생 때는 무언가가 베풀어지는 것은 물론 무언가가 제거된다.🌱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이것이 은유적인 표현이지만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악과 결별하고 선한 것과 연합하는 정서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사랑을 제거하시고 거룩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시는 것이다.🥹
죄에 대한 극단적이며 고질적인 애착이 어떻게 해서 타락한 사람에게서 제거되는가?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죄의 극한 죄악성을 그 사람에게 드러내심으로써, 죄의 엄청난 규모와 그 사악함에 대해 책망하심으로써, 지금껏 전능하신 하나님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왔다는 사실을 양심에 드러내사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 하심으로써, 영광의 주께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죄 때문임을 확연히 인식하게 하심으로써, 제거된다.
그렇게 되면 죄에 대한 사랑이 그의 영혼 속에서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마음에 찔려" 고뇌와 절망 속에서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외치게 된다(행 2:37). 이것을 달리 말하면, 그 때에 그의 영혼이 영적으로 체험적으로 할례를 받는 것이요, 그 때에 죄에 대한 그의 사랑에 관한한 그가 죄악된 "육의 몸"을 벗는 것이다(골 2:11).
성도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은 여러 면을 지니지만, 그 큰 의도와 성취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위해 행하신 일이 그에게 효과를 내도록 한다. 혹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성령께서 성도가 연합의 측면에서와 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바를 영적으로 체험하게 하시고 실제로 그 효력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해 죽으셨다. 그가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고"(법적으로), 또한 그분의 죽으심은 곧 우리의 죄가 형벌을 받아 죽은 것이었다. 결국, 성령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지시면 그 때에 그는 먼저 우리 마음속에 죽음을 이루신다.
즉, 우리의 자기 의(self-rightousness)를 죽이시고, 우리의 갖가지 애착들 속에 있는 죄에게 치명상을 입히신다. 사도는 자신의 회심의 한 가지 면에 대해 말씀하는 중에,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 7:9)라고 말씀한다.
즉, "탐내지 말라", 음욕을 품지 말라, 불법한 것을 탐하지 말라는 등의 말씀들이 신적인 능력으로 그의 영혼 속에 와 닿을 때에, 자신의 죄의 끔찍한 본성과 그 범위가 그의 양심 속에 생생히 현실로 다가왔고, 그리하여 자기 자신에 대해 좋게 평가하던 모든 생각이 죽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기 의를 영적으로 죽이고 죄를 혐오하도록 만듦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체험적으로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빌 3:10)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실 것이며"(신 30:6).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50
● 골로새서 2장 11절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 빌립보서 3장 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