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성장 63] 성장의 촉진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성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은혜에 좌우되는 것이지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은혜이기 때문에 이것을 지으신 자는 자신의 전권적인 결정에 따라 나누어 주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자라나게 하시는 이"(고전 3:7)는 하나님이시다. 어떤 이에게는 믿음과 지혜를, 어떤 이에게는 사랑과 온유를, 어떤 이에게는 위로와 평강을,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능력과 승리를 자라게 하신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고전 12:11).
우리의 관심과 활동은 능히 할 수 있게 하는 은혜에 기인된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 3:5). 우리 안에 있는 선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샘에서 흘러 넘친 개울물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러한 확신으로 겸손과 감사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선을 향한 의지나 마음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지각에 빛을 비춰주고 위에 있는 것들에 우리의 애정을 주게 하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은혜의 수단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들을 부어 주지 않으신다면 역사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본 주제를 인간 책임 면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은혜에서 자라나야 할'(벧후 3:18)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은혜'(약 4:6)를 얻음은 우리의 책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게 주시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얻지 못함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다(벧전 5:10).
우리는 다음과같이 명백한 교훈을 받는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얻을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이 말씀은 우리가 은혜를 새로이 공급받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이 가르침에 대하여는 어떤 운명주의자들도 무감각할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길 기뻐하심에 대하여 관망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와는 상반된다. 필요한 공급이 주어질 때까지 분명하게 '구하고,' 성실하게 '첮고', 끈질기게 '두드려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에서 강하게 되라"는 명령을 받았다(딤후 2:1).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는 초청을 받는다(히 4:16). 이 은혜는 사죄하는 은혜, 거룩케 하는 은혜, 보호하는 은혜이며, 인생의 모든 평범한 일을 수행케 하는 은혜이다.♡
이것은 매일 은혜를 새로이 공급받기 위한 우리의 의무요 특권이다. 사도는 '은혜를 받자'라고 말했다(히 12:28). 그러나 우리가 이 구절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다섯 가지 요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우리에게 특권이 있음을 의미함) 은혜(능히 하게 하는)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이 과업이 우리에게 할당되었음). 우리는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을 만한 의무를 그의 특별한 도움이 없이 수행할 수 없다.
이 도우심, 혹은 능력을 우리는 분명히 부지런히 계속적으로 구해야 한다. 우리는 이 구절에 대해 율법적인 정신이 농후하다고 지탄받은 사람인 죤 오웬의 말을 인용하겠다.
"은혜의 단계와 분량을 이 정도까지 자라나게 하기 위하여 신자는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복음의 은혜로 무장해야 한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예상하시고 요구하시는 바 모든 영광이 가로놓여 있다"
아, 그런데 수많은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hyper Calvinists)은 이와 같은 거룩한 균형에서 멀리 벗어나 버렸다.
우리는 필요로 하는 은혜를 새로이 공급받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의 약점, 부족, 죄성을 깨달으면서 모든 교만과 자만을 물리치기 위해 애를 쓰야 한다. 둘째, 우리는 이미 받은 은혜를 더욱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 세째,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적인 사역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에게 가까이 나아감은 우리의 특권이요 의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확신을 갖고) 나아가자.
"여기에서 동사는 계속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현재완료시제이다. 우리가 '담대히'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요 특권이다. 사도는 우리로 부단히 그렇게 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는 (문맥에서 살펴보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그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담대하게 나아갈 수 없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해야 한다.
우리가 히브리서 4:16의 복된 초청의 말씀에 부응하지 못하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무익한 변명만 늘어 놓는다면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다. 이렇게 변명한다는 것은 허무맹랑하고 쓸데없는 일로서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우리가 만일 이 말들의 근원을 조사해 보면 우리의 모든 의심은 가라질 것이다. 이 변명들은 자만심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약 4:6). 하나님은 나와 당신에게 "나의 힘을 의지하라"(사 27:5).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하라"고 말씀하신다(대상 16:11).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사 41:10)는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서, 그의 앞에 나아가서 "오 하나님시이여 종의 심령을 견고케 하소서"(느 6:9)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초주에 "네 하나님이 네 힘을 명하셨도다"를 인용하였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그의 모든 책임을 경감해 달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견고히 하소서"라고 부르짖었던 것이다.(시 68:28)
At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