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성장 61] 성장의 촉진
우리는 이제 이 주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 - 교리적인 부분이 아니라 실제적인 부분 -에 도달한 것 같다. 우리가 만일 성장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면,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아는 지식과 은혜 가운데 자라나야 할 필요성을 깨닫지 못할 것이며, 또 어떤 것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해당하고 어떤 것이 해당하지 않는가를 분명히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근본적인 관점에서 성도의 성장이 나무의 성장과같이 위로, 아래로, 안으로 바깥으로 자라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편에서 양심이 거기에 부응해서 행사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나무는 기계적으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땅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고 위로부터 비와 햇볕을 공급받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가계(家系)에 여러 단계가 있고, 또 각 단계에 특징적인 요소가 있음을 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유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장년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나무의 성장 사이에는 비슷한 관계가 성립된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본질적이고 실제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는 도덕적인 존재들이고 책임있는 피조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계적이다. 우리가 이제 관심을 기울이려는 분야는 우리의 도덕적 요인들과 책임수행에 대해서이다.
영적인 성장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적합한 수단들을 힘써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특권을 사용하고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시고 제공하신 복의 소산이며, 그가 베푸신 각 단계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발전해 나간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그러한 것처럼 영적으로도 그러하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성장을 저지하거나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으며 그것을 고양시키는 요소들이 있다. 신자가 해야 할 의무는 전자는 지양시키고 후자는 고양시키는 일이다. 영적인 성장은 우리가 활동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남아 있는다면 촉진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영적인 건강을 얻기 위해 최대한도로 힘써 노력해 나가는 데 있다.♡
성도의 영적인 건강을 다루기 위해 꼭 명심해야 할 바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두 가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요소나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으로, 여기에는 많은 주의와 지혜가 요구된다. 이들 두 요소는 하나님과 성도들이며, 두 원리는 하나님 주권의 사역과 인간 책임의 수행이다.
여기에는 어려움이 있는데 우선 각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과 전자 후자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수단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자신의 근면과 성실로써 의무를 다함으로 자신을 너무 과신하면, 그것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알미나안주의자들이 바로 이런 자들이다. 다른 한편,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의 살리심에만 전적으로 안주하여 타성에 빠진다면, 무책임한 존재로 화할 것이다. 운명론자들이나 도덕폐기론자들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우리는 극단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만이 그의 백성들을 자라게 하시고 번성케 하실 수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그를 온전히 의지해야 함을 분명히 인식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영혼의 생명을 일으킬 수 없음같이 그것을 보존하거나 증가시킬 수 없다. 그 진리가 우리의 마음 속에 있고 성경의 말씀이 너무 명백하고 너무 많이서 우리는 조금의 의심도 갖지 못한다.
"아무도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것이요"(시 23:29). 자연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모두 이에 해당한다. 보다 적극적인 방면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우리의 생명을 견고케 하소서"(시 68:9). "여호와는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시 16:5). "네 하나님이 네 힘을 명하셨도다"(시 68:28).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로다"(호 14:8).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사 26:12).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이다"(시 87:7).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요 15:5).
육체를 시들게 하는 이러한 말들을 자랑하는 근거를 말살시키며 그것의 온당한 위치에 영광의 면류관을 둔다. 그러나 또 다른 성경 구절들이 있으니 이것은 가치면에서나,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면에서나 매우 명백하고도 필요한 것들이다.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말하며 그것의 이행을 가르치고 그것을 행치 않을 때 책망한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이성적인 피조물로 대하시며 그들 앞에 의무를 주시며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진노를 보이시며 그들로 실패하게 하심을 보여준다. 그는 분명히 그들에게 '은혜 안에서 자라나라'고 말씀하셨다(벧후 3:18). 그는 그들에게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셨다(벧전 2:1,2).
그는 히브리인들이 성장하지 못했음을 인하여 그들을 책망하셨다(5:11-14).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선을 약속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선포하셨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구속이 이와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7).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고 말씀하신다.
얼핏 보기에 하나님 주권의 사역과 신자의 책임이행 사이의 일치점을 찾아서 그 관계를 정의하고 그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는 모른다.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해결해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에 참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에 대한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 준다. 또한 그 용어가 너무나 분명히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초신자일지라도 그것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사도 바울이 그의 목회 이력을 보다 즉흥적으로 표현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보다 넓게 적용해 보면 이 구절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실제적인 면을 다루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세대에 걸쳐서 주님의 백성들이 증거했던 바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동일하게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