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98] 이삭을 제물로 바침(창세기 22장)

En Hakkore 2024. 3. 19. 11:0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창 22:1).

"그 일 후에" 라는 표현은 우리를 이삭의 탄생과 관련한 21장으로 데려가는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거기에는 매우 풍부한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두 가지 관점으로부터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적용과 시대적인 적용이다. 앞글에서 우리는 전자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후자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이삭의 탄생은 이스마엘의 적의(敵意)를 일깨웠다. 그리하여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21:10).

갈라디아서 4:22-31로부터 우리는 사라의 이러한 요구 속에 매우 심대한 의미가 있었음을 배운다. 다시 말해서 거기에는 시대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먼저 우리는 사라가 "기업"이라고 말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앞장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삭은 그의 기적적인 탄생 안에서 주 예수를 예표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들을 가리킨다. 한 마디로 그는 신적 아들됨(divine sonship)을 대표한다.

다시 말해서 이삭은 "약속으로 말미암은 영적 자녀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들을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로 부른다(롬 8:17). 나라로서 이스라엘은 신약의 교회와 함께 기업을 상속받지 못한다. 이런 차원에서 이삭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을 상징한다면, 이스마엘은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시대에 선민의 자리로부터 쫓겨난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한다.

이제 이러한 열쇠를 가지고 창세기 21장의 두 번째 부분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그리고 한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의 향후 역사(歷史)가 어떻게 상징적으로 펼쳐지는지 주목해 보도록 하자.

1.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21:14).

여기에서 우리는 하갈과 그녀의 아들이 광야에서 방랑자가 된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얼마나 정확한 상징인가!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이 "더 큰 아브라함의 아들"을 배척한 것의 분깃이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 오신 그 오랜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광야에서 방랑했다.

2.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15절)

여기에서 우리는 상징적으로 이스라엘로부터 성령이 거두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물이 떨어진지라!" 바로 이것이 유대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 "수건"이 그 마음을 덮은 것을 설명해 준다(고후 3:15). 성령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양식을 끌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3.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16절).

여기에 예루살렘이 자신의 무너짐을 보며 애곡하는 것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여기의 하갈의 모습은 애가(哀歌)를 부르는 예레미야의 모습과 얼마나 비슷한가! 그녀는 예루살렘 성문 앞에서 "애곡하는" 가련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4.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르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17절).

바로 여기가 희망이 시작되는 곳이다. 여호와가 자신의 언약 백성을 다시 받으시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죄로 인해 애곡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를 고백하며, 겸비한 마음으로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고 부르짖을 때이다(마 23:39).

5.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19절).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다시 한 번 이스라엘에게 부어진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신" 것처럼, 머지않은 장래에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눈을 밝히실 것이다. 그리고 장차 올 대환난의 때에, 경건한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증언을 지키며 어린 양의 피로 자신들의 옷을 씻을 것이다(계 14:3-4, 20:4).

6.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20절).

이와 짝을 이루는 것이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8절의 약속이다. 이러한 상징은 얼마나 정확한가! 하나님의 호의(好意)를 회복한 이스라엘은 천년왕국 때에 그와 같이 될 것이다. 한 이스라엘은 천년왕국 때에 그와 같이 될 것이다.

7.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21절).

바란은 "아름다움" 혹은 "영광"을 의미한다. 천년왕국 때에 광야는 장미꽃처럼 아름답게 필 것이다. 그것은 지금 창조세계 위에 드리워져 있는 저주가 그때 제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쉐키나의 영광이 다시 한 번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다.

8.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21절).

이것은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을 애굽과 연합시킨다. 천년왕국 동안 그와 같이 될 것이다.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 19:24,25).

9.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22절).

이와 같이 천년왕국 때에 이방인들은 여호와께서 다시금 유대인들 가운데 계시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들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슥 8:23).

10. "아브라함은 브엘세바네 에셀나무를 심고"(33절).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동속에는 매우 큰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나그네로부터 소유로의 변화를 상징한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맹세의 샘"을 의미하는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음으로써 그 땅을 소유로 취한다. 나무를 심는 것은 오랫동인 정착하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사 65:22)

11.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33절).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부른다. 주의 나라가 능력과 영광 가운데 임할 때도 그럴 것이다. 계속적인 변화와 모든 썩음 대신에, 영원한 불변과 평안과 축복이 있을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시 102:27, 28).

12. 여기의 상징을 완성하는 마지막 한 가지만 더 살펴보도록 하자.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25:16). 천년왕국 때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가 회복되어, 열방 가운데 지도자의 위치로 높여질 것이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