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92] 우리 모두의 조상인 아브라함

En Hakkore 2024. 3. 19. 10:56

사랑하는이여!, 이제 여러분은 왜 아브라함이 "우리 모두의 조상(father)"으로 불리는지 알겠는가? 한 마디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만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세기 22장에 나타나는 아브라함을 보라.

여기에서 그는 이삭을 제물로 바친다. 이것 역시 우리에게 적용되는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경험 속에 모리아 산에서 행해진 사건과 상응하는 것이 있는가? 물론 그렇다. 그러나 이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 주목하라. 그것은 아브라함의 순례여행의 초창기가 아니라 거의 막바지 때이었다. 💕

아, 삶의 연단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불은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아브라함은 결국 정금처럼 단련되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올려놓는 자리에까지 도달했다. 그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는 자기 마음이 가장 사랑하는 우상을 하나님의 발 앞에 놓았다. 마침내 은혜가 승리했다.

오직 은혜만이 사람의 마음을 신적인 의지(意志)에 전적으로 순복하는 자리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은혜는 우리에 대하여도 결국 승리할 것이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의 수많은 경험과 시험과 실패 속에서  당신 자신의 경험과 시험과 실패가 나타나는 것을 보라.

또 "아브라함 안에서의 은혜의 최종적인 승리" 안에서 "당신 안에서의 그것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약속을 보라. 이와 같이 창세기는 현재로 그대로 옮겨질 수 있는 살아 있는 책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아브라함의 생애로부터 매우 값진 교훈들을 많이 배울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를 신자의 표본으로서 살펴보았는데, 다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서 그를 고찰해 보도록 하자. 믿음 장인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브라함은 매우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이삭의 믿음과 야곱의 믿음에 대해서는 단지 한 번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는 세 번 언급된다(8, 9, 17절을 보라). 아브라함의 믿음이 다른 사람들의 믿음보다 더 많이, 더 가혹하게, 더 반복적으로, 그리고 더 다양하게 시험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먼저 그는 자신이 태어난 땅을 떠나도록, 스스로를 가정과 친척으로부터 분리시키도록, 그리고 하나님이 "보여 주실" 땅으로 먼 여행을 떠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제 히브리서 11장에서 우리는 그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는 말씀을 듣는다(8절).

그리고 새 땅에 도착한 후 그는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한 채 외인과 나그네로 거기에서 거류했다. 나중에 그가 소유한 것은 고작 매장지가 전부였다. 그는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면서 거의 100년을 거기에서 머물렀다. 또 그의 믿음은 사라로 말미암아 아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시험을 받았다.

그의 몸은 "죽은" 것과 같았으며, 그의 아내의 몸 역시 오래 전부터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 했다(롬 4:20, 21). 💕

마지막으로 최고의 시험이 임했는데, 그것은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으로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아들을 드렸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니라"(히 11:7, 9).

그러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믿음과 마찬가지로, 그의 믿음 역시 때로 흔들렸다. 그 역시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性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도 역시 불신앙의 악한 마음이 있었다. 하나님의 영은 밝은 부분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부분까지도 있는 그대로 나타낸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적 삶의 비극적인 역사(歷史)를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직시해본 적이 없다면, 우리는 믿음과 불신앙 그리고 순종과 불순종의 이상한 혼합을 보면서 의아해 할 것이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할 때 순종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불신앙으로 여호와의 명백한 명령에 불순종하여 아버지와 조카를 데리고 떠났다. 또 그는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났지만, 그러나 불신앙으로 하란에서 멈추었다(창 11:31). 또 그는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기근이 일어나자마자 그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다(12:10).

또 그는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돌아와 거류했지만, 그러나 불신앙으로 하나님이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애굽인 여종 하갈을 첩으로 취했다. 또 그는 믿음으로 그돌라오멜을 쳐부수고 롯을 구출했지만, 불신앙으로 나중에 아비멜렉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20:21).

이 모든 것들은 신자 안에 있는 두 본성을 보여 주는 슬픈 실례(實例)들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종종 큰 불일치를 발견한다.

믿음으로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넜다. 그러나 얼마 후 불신앙으로 그들은 광야에서 굶주려 죽을 것을 두려워했다. 여호와를 붙잡는 믿음으로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에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 다녔다.

여호와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찬 엘리야는 홀로 바알의 선지자 400명과 맞섰다. 그러나 그 직후 그는 두려움 가운데 격노한 이세벨 왕비로부터 도망쳤다. 또 베드로를 생각해 보라. 그는 바다로 뛰어들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로마 군병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다. 그러나 바로 그 날 밤 한 여종 앞에서 두려워 떠는 가운데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다.

아, 불신앙의 길은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이 있나! 정말로 불신앙은 우리가 너무나 쉽게 사로잡히는 죄이다.

위에 열거한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오래 참으심을 보여 준다. 💕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오래 참으심으로 다루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계속적인 원망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굶주림으로 멸망을 당하지 않았다. 도리어 하나님은 그들을 "천사의 양식"으로 먹이셨다(시 78:25, 한글개역개정판에는 "힘센 자의 떡" 이라고 되어 있음).

또 다윗은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엘리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세벨의 격노의 희생물이 되지 않았다. 도리어 나중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려졌다. 베드로 역시도 주님을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으로부터 부인을 당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내 양을 먹이라"는 특별한 위임을 받았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믿음이 비틀거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도리어 하나님은 그를 온유와 인내로서 대하셨다. 그리고 그를 한 발자국씩 인도하시면서 경험의 학교에서 훈련시키셨다. 마침내 갈보리의 모형인 모리아 산에서 믿음으로 독자를 드릴 수 있게 될 때까지 말이다. 💜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