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83] 아브라함과 하갈

En Hakkore 2024. 3. 18. 11:00

성경에서 "샘"이 언급되는 다음 구절은 창세기 21:19이다. 이 구절 역시 하갈과 관련된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여기의 상징은 얼마나 명백한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실 때까지 그는 결코 그리스도를 볼 수 없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이것은 하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또 이것은 루디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 16:14). 나아가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이다.

계속해서 창세기 29:1-2을 살펴보자.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때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이러한 말씀에 대해서는 특별한 해설이 필요치 않다.

"우물"(well)은 양들이 물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하는 장소이다. 여기의 우물이 상징하는 자를 생각해 보라.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 - 그 자신의 생명 -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곤고한 영혼을 날마다 새롭게 하신다.♡

계속해서 민수기 21:16-17을 살펴보자.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우물"이 의인화되는 것을 발견한다 -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다시 말해서 "우물"을 찬미하며 노래하라는 것이다. 또 우리는 여기에서 우물이 이스라엘이 모이는 장소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 모두 우리의 복된 주님 곁에 모이자!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신 그를 찬미하며 노래하자! 💕

계속해서 사무엘하 17:17-19을 보도록 하자.

"그 때에 요나단과 아하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여종은 그들에게 나와서 말하고 그들은 가서 다윗 왕에게 알리더니 한 청년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의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전혀 알지 못하더라."

이와 같이 "우물"은 요나단과 그의 종을 보호해 준 장소였다. 그들은 우물 속에 안전하게 감추어졌다. 이것은 우리에게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라는 말씀을 일깨워 주지 않는가(골 3:3)?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배우게 된다.

첫째로, "샘"(혹은 "우물")은 "물 근원 곁"에서 발견된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는 기록된 말씀 안에서 발견된다. 둘째로, 하나님은 샘에서 스스로를 나타내신다는 사실, 오늘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를 충분하게 알리시고 나타내신다.

셋째로, 하나님은 하갈의 눈을 열어 주시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그녀가 샘을 "보았다"는 사실. 이와 같이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주셔야 비로소 우리가 그리스도를 올바로 볼 수 있다.♡

넷째로, "양들"이 물을 마시는 것은 우물이라는 사실. 이와 같이 우리 영혼이 새로워지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교제 안에서이다. 다섯째로, 우물은 이스라엘이 함께 모이는 장소였다는 사실. 이와 같이 오늘날 그리스도는 우리가 예배를 위해 보이는 중심지(Gathering Center)이다.

여섯째로, 이스라엘이 우물을 "노래"하라고 명령받은 사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은 영원히 우리의 찬미의 주제이며 대상이다. 일곱째로, 우물은 요나단과 그의 종이 적들로부터 보호받은 장소였다는 사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원수들로부터의 은신처와 모든 폭풍으로부터의 피난처를 발견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물 근원 곁 술 길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16:7-9).

은혜는 의(義)로 말미암아 통치한다. 그녀를 찾은 것은 은혜였으며, 그와 같이 그녀에게 충고한 것은 의였다. 은혜는 결코 의를 희생시킨 값으로 역사(役事)하지 않는다. 은혜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무시하기보다 도리어 강화시킨다.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도록" 가르친다(딛 2:12). 💕

여기에서 하갈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주목하라.

첫째로, 여호와의 사자는 그녀를 "사래의 여종"이라 부름으로써 그녀가 아브람과 결혼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로, 하갈은 그녀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도록" 명령받는다. 하나님 자신이 문을 열면서 하갈을 아브람의 집으로부터 내보낼 날이 올 것이었다(창 21:12-14).

그러나 그때까지 그녀는 사래의 권위에 "복종"해야만 한다. 이후 13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몫을 견디며 자신의 의무를 이행해야만 한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은 그녀에게 한 가지 약속을 주심으로써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신다(창 5:10을 보라).

여기의 말씀에서 우리는 무슨 교훈을 배우는가? 여기에 자신의 의무로부터 도망친 자가 있는가?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돌아가서 복종하라"고 말씀하신다. 만일 우리가 어떤 잘못을 행했다면, 평안과 축복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회개와 복종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돌이키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11, 12절).

이러한 예언은 이스마엘 자신보다 그의 자손들에게 더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의 예언이 아랍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었는지 생각해 보라. 모든 세대를 통해 그들은 항상 거칠고 호전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러 나라들에 의해 정복을 당했지만, 단 한 번도 고분고분하게 순복하지 않았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13, 14절).

하나님이 예전에 "샘"에서 하갈을 발견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를 발견하시기를 원한다. 또 그녀가 거기에서 그를 보고 그의 말씀을 들은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