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66] 아브라함을 부르심
우리는 아브람 안에서 믿음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배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신자들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진다. 아브람의 부르심은 우리에게 믿음의 삶의 출발점을 보여 준다.
첫 번째 요구는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 아브람은 그의 "고향"뿐만 아니라 "친척 으로부터 떠나라고 부름 받는다. 아브라함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되었지만, 데라는 여전히 우상 숭배자였다. 그러므로 마땅히 데라는 뒤에 남겨져야만 했다. 왜냐하면 뜻이 다른 두 사람은 결코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암 3:3). 부자지간의 가장 밀접한 띠조차도 서로 상반되는 동기(動機)를 가진 두 영혼을 하나로 연합시킬 수 없다. 하늘의 보화를 가진 사람과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훔쳐갈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은 결코 동행할 수 없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아브람의 응답이 어떠했는지를 보기 위해, 우리는 앞장으로 다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데라는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11:21).
이러한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아브람의 두 가지 잘못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그에게 세 가지를 명령하셨다. 그는 고향을 떠나야 했으며, 친척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켜야 했으며, 여호와께서 그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야만 했다. 아브람은 첫 번째 요구에 대해서는 순종했지만, 나머지 두 요구에 대해서는 실패했다.
그는 갈대아를 떠났다. 그러나 친척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대신, 그는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과 함께했다. 데라는 "지체"를 의미한다. 결국 데라가 아브람을 따른 것은 하란에서 최소한 5년을 지체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한편 하란은 "바싹 마른"을 의미한다.
( 💜 유브라데를 떠난 대상(隊商)들이 가나안에 도착하기 전에 잠시 머무는 장소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아브람의 응답은 느리고 부분적인 것이었다. 이사야 51:2의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라는 말씀 가운데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은 아브람을 "홀로" 부르셨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가서야 겨우 순종했다.
신약에 아브람의 잘못이 언급되지 않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38). 히브리서는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순종만을 언급할 뿐 "친척"을 데리고 간 불순종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허물과 잘못이 "도말된" 것이다.
여호와의 명령은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의 명령은 결코 가혹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그 이유가 설명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거기에는 항상 약속이 따른다. 이것은 아브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라고 약속하셨다(12:2).
첫째로, 우리는 여기의 약속이 매우 일반적인 용어로 그리고 아브람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의도된 방식으로 표현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아직까지 그 땅을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어떤 확증도 없었다.
둘째로, 우리는 여기의 약속이 앞의 명령과 밀접하게 상응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의 명령에 세 가지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처럼, 여기의 약속에도 세 가지 복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복이다. 이것은 고향을 잃는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가 속해 있었던 나라는 총체적인 우상 숭배 가운데 빠져 있었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멸망을 당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었다. 또 하나는 "네 복을 줄" 것이라는 복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친척"을 떠남으로부터 말미암는 손실보다 훨씬 더 큰 복을 주신다.
마지막 하나는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라는 복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집을 떠날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새로운 집(이스라엘 집)의 머리로 만드시고, 그의 이름이 세상 전체에 알려지고 공경 받도록 만드실 것이었다.
셋째로, 우리는 여기의 약속 가운데 이방인들을 부르시는 복이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아브람의 응답은 하나님의 긍휼이 세상 전체로 확장되는 일련의 신적 역사(役事)의 첫 번째 고리가 될 것이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보게 된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이러한 약속은 육체를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의 탄생 안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마 1:1). 그러나 그것의 완전하며 궁극적인 성취는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과 그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