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David 274] 복위 2(사무엘하 20장)
압살롬의 반역과 죽음으로 인한 다윗의 슬픔을 상쇄해 줄 만한 것들이 적지는 않았다. 이미 보았듯이, 그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은 분명히 그의 마음에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자기에 대한 시므이의 극적인 태도 변화, 결국 므비보셋이 자기에게 진실했었다는 사실의 발견, 늙은 신하 바르실래의 애정 어린 경의, 그리고 유다의 장로들과 백성들의 환영 등은 추방지에서 돌아오는 왕을 고무하고 격려하기에 충분했다.
상황은 분명하게 나아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맑은 하늘에서 햇빛이 쏟아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 그러나 구름은 큰 비가 내린 후에도 되돌아온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윗의 지평선 위로 갑자기 어두운 구름 한 점이 일어나 또 다른 폭풍이 올 것을 암시하면서 그를 크게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열 지파의 지도자들이 길갈에서 다윗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 유다 지파 사람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이것은 옥에 티였다. 그 두 무리 사이에서 왕을 모셔오는 문제와 관련해 어리석은 논쟁이 일어났다.
"그 영광의 순간에 그들 사이에서 분쟁이 벌어졌다. 그것은 어느 쪽이 다윗에 대해 더 많은 권리가 있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우리의 수가 더 크다'고 말했다. 유다의 장로들은 '우리가 그와 더 가깝다'고 말했다. 혹자는 다윗이 자기 백성들이 누가 더 그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누가 먼저 그에게 경의를 표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를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보며 아주 안심하고 행복했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분쟁은 또 다른 반역의 원인이 되었다"(Matthew Henry).
다윗의 한 가지 시련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시련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앞선 시련의 잿더미 위에서 나타났다.
얄팍한 충성 맹세
아, 사랑하는이여,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 저런 형태의 문제들 없이 살아가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에게 미소를 지을 때라도 그러하다. 머지않아 우리는 "이 세상은 우리가 쉴 곳이 아니다"라는 거친 진리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영웅의 경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승리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지도급 백성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의 왕국에 대한 전복의 위협으로 바뀌었다.
이 세상에 안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의 무언가에 희망을 걸고 피조물 안에서 만족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확실한 절망을 자초하는 것에 불과하다. 해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전 1:4). 그러나 우리는 이 우울한 진리를 실제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그것이 진리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앞 장을 사무엘하 19장에 기록된 사건의 예표적 의미를 주목하는 인용문과 더불어 마쳤다. 사무엘하 20장의 서두는 그와 동일한 생각을 입증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우리는 고백을 통해 이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가시적인 왕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중에는 알곡만이 아니라 가지라도, 좋은 고기만이 아니라 나쁜 고기도, 그리고 지혜로운 처녀들뿐 아니라 어리석은 처녀들도 있다(마13, 25). 이것은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분명하게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때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이 시험에 처하게 하시고 그로 인해 거짓 신자들이 드러나게 하신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이제부터 살피고자 하는 사건의 섭리적 의미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에게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나 그러했기에 그들은 유다 지파 사람들이 자기들과 상의하지 않고서 왕을 모셔오는 일에 선수를 친 것에 상처를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의 실제 상태는 너무나 신속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아주 사소한 문제가 다윗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식혔을 뿐 아니라 완전히 증발되게 만들었다. 한 사람이 일어나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삼하 20:1)고 말하자마자 그들은 즉시 그 말에 반응하며 자기들의 공언했던 충성을 내던져버렸다.
그들의 충성에 대한 공인에는 아무런 실제성도 없었다. 그들은 선택의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대신 어느 "불량배"를 택했다. 이것은 훗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여 준 모습을 얼마나 잘 상기시켜 주는가!
그들은 처음에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 21:9)라고 외쳤으나, 얼마 후 문제가 발생하자 거리낌 없이 그리스도가 아닌 바라바를 택했다. 그리고 그때 이후, 특히 시험과 박해의 때에, 기독교 신앙을 큰소리로 공언했던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신앙보다는 이 세상과 자신의 인간적인 안전을 택했던가!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 3 p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