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45] The Life of Elijah
탄원
"여호와께 부르짖어"(왕상 17:20).
엘리야는 아직 이 수수께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이 어려움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그분께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그 아이의 죽음과 관련해 하나님께 겸손히 따지면서 아주 진지하고 끈덕지게 도우심을 간구했다. 이때 그가 사용했던 정중한 말씀에 주목하라.
그는 "주님, 왜 우리에게 이런 참담한 일을 행하셨습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을 죽게 하셨나이까"(20절) 라고 물었다.
이 사건의 "이유"는 그가 따질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지존자가 일하시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분의 은밀한 계획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그것을 파헤치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며 자신이 하시는 모든 일에 충분하고 합당한 이유를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에 겸손하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아멘!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찌하여... " 라는 질문은 하나님께 대한 "반문"(replying againat God) 으로 간주된다(롬 9:19-20).
엘리야가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 속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엘리야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승인하셨던 특별한 관계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는 "내 하나님 여호와여" 라고 외쳤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개인적 영향력에 근거한 탄원이다. 왜냐하면 이런 말들은 언제나 "언약 관계"(convenant relationship)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내 하나님 여호와여"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금이나 은보다 귀하다.👍
둘째, 엘리야는 그 재앙의 원인을 그 근원에까지 추적해 들어갔다.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을 죽게 하셨나이까."
엘리야는 그 아이의 죽음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암 3:6).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 외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 어떤 재앙도 닥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셋째, 엘리야는 그 고통의 극심함을 탄원했다.
이 불행은 단지 한 여자나 어머니에게 닥친 것이 아니라 "과부"에게 닥쳤던 것이다 - 하나님은 특별히 과부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더구나 그녀는 엘리야에게 "내가 우거하는 집"의 주인이었다. 즉 엘리야에게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아뢰되"(왕상 17:21).
이것은 엘리야의 겸손을 보여 주는 것이었을까? 그처럼 위대한 인물이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그렇게 여러 번 몸을 엎드렸다는 것, 그리고 의식상 부정하다고 간주되는 시체와 그렇게 직접 접촉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또한 그가 그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얼마나 깊이 동요했는지 보여 주는 것일까?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호소의 강렬함, 즉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그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생명과 온기를 전해 주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이것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면서 권능으로 행하시고 은혜로 이루시는 일, 즉 죄인들 위에 성령이 임하셔서 그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눠주시는 일에 대한 징표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여기에는 하나님이 죄인들의 회심시에 도구로 사용하시는 사람들은 스스로 작은 자들이 되어 자신들이 섬기는 사람들의 수준으로까지 낮아져야지, 마치 자기들이 그들보다 우월한 존재인 양 존경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암시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왕상 17:21).
이것은 엘리야가 자신의 탄원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놀라운 복을 기대하는 데 얼마나 익숙해 있었는지 보여 준다.
그는 하나님이 하실 수 없거나, 너무나 엄청나기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여겼다. 의심할 바 없이 그의 탄원은 성령에 의해 촉구된 것이었다. 그러나 엘리야가 그 아이가 살아날 것을 기대했던 것은 그의 믿음이 갖고 있는 놀라운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 이전에 누군가 죽음을 이기고 일어섰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하는이여, 성경에 이런 내용이 기록된 것은 우리를 위한 교훈과 격려가 되게 하려는 것임을 기억하라.
의인의 열렬한 기도는 효력이 있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에 앉으신 위대한 왕께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기꺼이 그분께 큰 탄원을 드리자. 믿는 자들이 주님의 무한한 능력과 충분하심에 의지하면 할수록, 그분은 더욱 영광을 받으신다. 할렐루야!
Arthur W. Pink 엘리야의 생애 p144
✍️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롬 9:19-20).
One of you will say to me: “Then why does God still blame us? For who is able to resist his will?” But who are you, a human being, to talk back to God? “Shall what is formed say to the one who formed it, ‘Why did you make me like this?’ ”(NIV Romans 9: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