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40] The Life of Elijah
과부의 절망
아들의 죽음은 이 가련한 과부에게는 무거운 고통이었다. 이것은 어느 어머니에게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그녀에게 특별히 모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이미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어 말년에 그녀를 부양하고 위로할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든 사랑은 그녀의 아들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죽음과 함께 그녀의 모든 소망은 사라졌다. 참으로 그녀의 숯불이 꺼지고 만 것이다(삼하 14:7). 왜냐하면 이제 이 세상에서 그녀의 남편의 이름을 보존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의 경우에서처럼 이 큰 불행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요 114) 것이었고, 그녀에게 더욱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요셉과 다니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련은 모질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보다 큰 영예를 허락해 주셨다.
오, 믿는 자들이여, 히브리서 12장 11절에 나오는 "후에" 라는 말을 굳게 붙들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왕상 17:18).
아, 우리는 얼마나 가련하고 넘어지기 쉬운 존재인가!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이 우리를 내리누를 때,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 손길에 겸손히 복종하기보다는 반항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손아래에서 겸손히 몸을 낮추고 그분이 무슨 이유로 우리를 괴롭게 하시는지를 묻기보다는(욥 10:2) 다른 누군가를 지목해 그가 우리의 곤경의 원인이라며 비난하려 한다.
이 과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엘리야에게 자기와 함께 그리고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간청하기보다는,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게 해주시고(욥 6:24), 그 고통이 오히려 자신의 영혼에 선한 것이 되게 해주시기를 바라기보다는 엘리야를 비난하는 쪽을 택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의 특권을 사용하는 데 너무 자주 실패한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이것은 엘리야가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가 보았던 침착함과 놀랄 만큼 대조를 이룬다. 그녀는 너무 갑작스럽게 재앙을 재앙을 당했다. 그리고 사실 그런 상황에서, 즉 전혀 예기치 않았던 문제에 빠진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갑작스럽고 모진 시련을 겪을 때 성마르게 폭발하지 않고 하나님을 흔들림 없이 신뢰하며 그분께 완전히 복종하려면 많은 은혜가 필요하다. ❤️🩹
우리 모두가 욥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2:10; 1:21)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변명하는 대신 우리 자신을 가차 없이 헤아려보고 자신이 하나님께 지은 죄를 고백해야 한다.
Arthur W. Pink 엘리야의 생애 p129
☘️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욥 10:2).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욥 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