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7] The Life of Elijah
종의 길, 순종의 길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왕상 17:10).
이로써 엘리야는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의 종임을 증명했다. 왜냐하면 종의 길은 곧 순종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 길을 저버린다면 그는 종이기를 그치는 것이다. 종과 순종은 일꾼과 일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한"(for Christ) 자신들의 봉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려면 자신들의 후원과 지원을 받으실 필요가 있는 것처럼, 자기들이 그분을 도와야 한다고 여긴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룩하지 못한 손길이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거룩한 방주가 땅에 떨어질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틀렸다. 아주 많이 틀렸다.
"그리스도께 대한"(to Christ) 섬김, 그분이 지워주시는 멍에에 대한 순종, 그분의 뜻에 대한 항복, 그분의 명령에 대한 복종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사는 것 이외에 그 어떤 기독교적 섬김도 인간의 고안물이요, 육적인 에너지요, "다른 불"(신 26:61)에 불과하다.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순종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을 행할 수 있을까? 바울 시대의 유대인들은 자존심이 아주 강했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 그들은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롬 2:19)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21절). 거기에서 선언된 원칙은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복음을 선포하는 우리는 그 원칙을 따라 부지런히 자신을 살펴야 한다. 하나님이 내적인 진실성을 요구하신다고 선포하는 우리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인가? 모든 사람의 눈에 정직하게 행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우리는 모든 빚을 다 갚았는가?
믿는 자들은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하는 우리는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며 보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우리의 설교에 반응하지 않더라도 놀라지 말라.
길르앗의 목가적인 평안함을 떠나 왕에게 맞서는 어려움을 겪는 것, 아합 앞에서 떠나 그릿 시냇가의 고독 속으로 물러가는 것, 말라버린 시냇가를 떠나 사르밧으로 옮겨가는 것 - 우리의 영적 삶이 형통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심적 불안과 거주지의 이동을 겪어야 할 필요가 있다.
"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렘 48:11).
여기에서 사용된 표현은 매우 시사적이다. 모압은 오랫동안 평안한 상태를 유지했기에 무기력하고 연약하게 되었다. 오, 모압은 정제되지 않은 포도즙처럼 상해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해서 그를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옮기고 계셨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둥지가 요동하고 우리의 환경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에 의해 포로가 되지 않으려면 그것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아아, 정련하시는 분의 은혜로운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실 때 얼마나 자주 안달하며 투덜되는가!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엘리야는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고 자기가 받은 명령대로 행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즉시 길고 유쾌하지 않은 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마치 하나님이 멋진 수레라도 제공해 주신 것처럼 기꺼이 여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마치 하나님이 그에게 그늘진 동산에서 사치스럽게 지내는 것을 금하기라도 하신 것처럼 광야를 가로질러 여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마치 하나님이 자신에게 길르앗에 이쓴 그의 친구들에게 돌아가라고 말씀하시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 이방인 과부에게 도움을 요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 이것은 마치 사자의 입속으로 자기의 머리를 밀어 넣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가라고 명령하셨으므로 그는 마땅히 그 명령에 따라야 했다. 또한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의 보호에 의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그의 미래의 가치와 생계 문제와 관련해 사르밧에서 과부가 그를 공궤하리라는 것 이상의 아무런 다른 정보도 제공받지 않으셨음에 주목해야 한다.
기근시에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먹이시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려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먹이시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분께 일임해야 한다. 만약 주님이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면. 우리는 그분이 미리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계시하시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가 미리 알수 있는 것은 거의 혹은 아무것도 없다. 하기야,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상황이 마땅히 그와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분이 우리와 관련해 갖고 계신 계획을 온전히 펼치시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신뢰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 조심하며 살아간다면, 그분은 점차 우리의 길을 쉽게 해주실 것이다.
그분의 섭리가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엘리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Arthur W. Pink 엘리야의 생애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