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6] The Life of Elijah
엘리야를 위한 보충 훈련
그러나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숨어라" 하고 명령하신 것은 그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아합의 분노 외에도 다른 곳에서 오는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가 드린 탄원이 이루어진 것은 그의 마음을 교만으로 채움으로써, 또한 그 땅을 황폐케 하는 재앙에 대해 굳은 마음을 갖게 함으로써 그에게 덫이 될 수도 있었다. 앞에서 그는 왕 앞에서 담대한 선포를 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보다 명예로운 사역이 놓여 있었다.
그는 단지 아합 왕 앞에서 여호와를 증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온통 뒤집어엎고, 더 나아가 그 방황하는 나라 전체를 다시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되돌려야 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한 때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고, 엘리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엘리야가 다시 공적으로 여호와를 대변하는 사역에 임하기 위해서는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추가적인 훈련이 필요했다.
오, 사랑하는이여, 주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낮아질 필요가 있다. 그에게는 힘든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의 육신이 적절하게 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3년이라는 시간을 더 은둔해야 했다. 이것은 사람을 얼마나 낮추는 세월인가!
아, 인간은 얼마나 신뢰하기 어려운가! 인간은 얼마나 쉽게 명예로운 자리를 탐하는가! 우리의 자아는 얼마나 쉽게 밖으로 드러나는가! 또한 도구인 주제에 얼마나 쉽게 자신이 도구 이상의 존재라고 믿으려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임하신 사역을 우리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다른 존재와 나누려 하지 않으신다. 그렇기에 그분은 그 영광의 일부를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받을 만한 사람들을 숨기신다.
우리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져 하나님과 대면할 때뿐이다. 아멘!🍄
이 교훈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다루시는 방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느 날 제자들이 자기들이 거둔 성공에 들떠서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예수께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했다"(막 6:30).
그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신 조용한 응답은 아주 교훈적이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31절). 이것은 자기들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는 우쭐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또한 자기들의 사역이 없으면 하나님의 계획이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은혜로운 구제책이었다.
"너는 여기에서 떠나... 숨으라."
때로 하나님의 이런 명령은 사역자들의 사역에 대한 소망을 꺾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때로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고통의 침상이나 애끓는 사별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마음으로부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에게 복이 있다!
하나님의 모든 종들은 갈멜 산의 승리를 맛보기 전에 그릿 시냇가의 힘든 경험을 겪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식의 불변하는 원칙이다.🍏
요셉은 온 애굽에서 다음 자리인 총리가 되기 전에 구덩이와 감옥의 수치를 겪어야 했다. 모세는 여호와의 백성들을 억압에서 이끌어내는 명예를 얻기 전에 생애의 1/3을 광야에서 보내야 했다.
다윗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모든 군대가 보는 앞에서 골리앗을 죽이기 전에 촌구석에 묻혀서 하나님의 권능의 충분성을 배워야 했다. 이것은 또한 완벽한 종이셨던 분에게도 해당되었다.
그분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은둔과 침묵의 30년 세월을 보내셨다. 그분의 사도들 중의 우두머리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가 되기 전에 아라비아에서 고독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니 얼핏 이상해 보이는 이 명령, 즉 "여기에서 떠나... 숨으라" 는 명령과 관련해 우리가 숙고해야 할 다른 관점은 없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엘리야의 복종 여부를 살피기 위한 아주 실제적이고도 모진 시험이 아니었을까?
나는 "모진" 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혈기왕성한 사내에게 이런 요구는 아합 앞에 서는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정적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공적 활동에 개입하는 것보다 수동적인 은둔 생활을 하면서 3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힘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매일 밤 많은 회중에게 연설하는 것보다 "한쪽 구석으로"(사 30:20, KJV) 물러나 있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다. 엘리야의 경우에 이 훈연의 목적은 아주 분명했다. 그는 주님의 이름으로 다른 이들에게 명령할 자격을 얻기에 앞서 그 자신이 주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Arthur. Pink 엘리야의 생애 p59
🍇 "비록 [주]께서 너희에게 역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나 다시는 네 선생들을 구석진 곳으로 옮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선생들을 보리라."(사 30:20 KJ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