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2025. 4. 16. 21:4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17:1).

이 기념비적인 사건은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약 860년 전에 일어났다. 이 사건에 내포된 극적인 갑작성, 엄청난 대담성, 그리고 놀라운 성격 등을 고려할 때, 우리는 세속의 역사 속에서 그와 비슷한 사건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초라한 옷을 걸친 평민 하나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리고 함께하는 자도 없이 배교한 이스라엘의 왕 앞에 나타나 여호와의 전령이자 무서운 심판의 통보자를 자처했다. 궁정에 있는 아무도 그에 관해 아무것도 - 혹시 무언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길르앗이라는 오지(奧地) 에서 갑자기 나타나 하늘의 열쇠를 손에 쥔 채 아합 왕 앞에 섰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리의 증인으로 사용하시는 자들은 대개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오고 간다. 그들은 영향력 있고 학식 있는 계급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이 세상의 시스템의 산물이 아니다. 세상은 결코 그들의 이마에 월계관을 씌워주지 않는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 이라는 표현 속에는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표현이 그냥 "하나님 여호와" 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라는 것에 주목하라.

이 표현은 "만군의 여호와" 라는 표현과도 구별된다.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첫째,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그분이 택하신 백성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한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 그들의 통치자, 그들이 바라야 할 분,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엄숙한 언약을 맺으셨던 분이다.

둘째, 아합은 엘리야가 전한 이 말을 통해 그분이" 살아 계시다" 는 주장을 듣게 된다. 그동안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이 엄정한 사실은 명백하게 의문시되었다. 여러 왕들의 통치가 이어지는 동안 이스라엘은 공개적으로 여호와를 조롱하고 무시했다. 그럼에도 아무런 무서운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는 여호와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되었다.

셋째,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 이라는 이 확언은 이제 그 무능함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될 생명 없는 우상들 - 그들은 자기들을 숭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보호할 수 없었다 - 과의 뚜렷한 대비를 보여 준다.

하나님은 어떤 사려 깊은 이유 때문에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신다"(롬 9:22).그러나 인간 역사의 전 과정을 통해 그분은 늘 자신이 사악한 세상을 다스리시고 죄에 대해 보복하시는 분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이스라엘 왕국은 오랫동안 평화와 번영을 누려왔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아주 조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모욕 당하신 것으로 인해 분노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이 그 막돼먹은 백성을 엄하게 징계하실 때가 이르렀다.

이제 그분은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셔서 자신의 징벌의 성격과 기간을 선포하셨다. 우리는 그 예언자가 그 무서운 메시지를 백성들이 아니라 아합 왕에게 전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아합은 그가 다스리는 땅에서 모든 우상들을 추방해 잘못된 상황을 수정해야 할 막중한 책임과 그렇게 할 만한 힘을 지닌 자였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자에게 아주 불쾌한 메시지를 전해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그 과업을 수행했다.

엘리야는 느닷없이 아합에게 들이닥쳤고, 그가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가 이스라엘의 타락한 군주에게 했던 첫마디 말은 자신이 살아 계신 하나님과 관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라는 말은 자신의 신앙에 대한 거리낌 없는 고백인 동시에, 아합이 무시했던 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엘리야가 아합에게 하나님을 "내가 섬기는" 이라고 표현한 것은, 지금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은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자신이 의심하지 않고 의지하는 분의 권능과 성실을 힘입어, 자신이 그 안에 서 있는 분의 임재에 힘입어, 그리고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을 힘입어서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Arthur. Pink 엘리야의 생애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