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엘리사의 생애 (Gleanings From Elisha)

[비움 55] 엘리사의 기적이야기

En Hakkore 2025. 2. 21. 17:35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왕하 13:6).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기적의 선지자였다.

선지자의 말 한마디에 왕은 순종했다. 왕이 먼저 활을 잡았고 그 위에 엘리사가 손을 얹었다. 이것 역시 상징적인 행동으로 이제는 전쟁의 책임이 선지자에게 있지 않고 왕 자신에게 있다는 표현이다. 또한 비록 활을 잡고 있는 것은 왕의 손이지만 그 위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지금 엘리사는 이렇게 왕에게 말하고 있다.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 20:15).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인생이라는 전쟁과 영적인 싸움에서도 승리하고자 한다. 그러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이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엘리사 선지자는 왕에게 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왕하 13:17).

이 구절에는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를 향한 선지자의 애정과 열심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병들어 죽어가는 선지자의 마지막 유언과 같은 행동이다. 자신의 편안함을 구하지도 않고 마지막 힘을 다해 이스라엘에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동쪽 창문을 열고 그곳으로 화살을 쏘게 하였다. 이미 그 지역은 하사엘이 점령한 지역이다. 그쪽을 향한 화살은 전쟁이 일어날 곳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화살이며 아람의 군대를 심판하는 심판의 화살이다.

선지자의 예언과 기적은 동일한 시간과 능력을 가지고 나타난다. 지금 엘리사의 예언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고, 그가 기대하는 기적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있다.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왕하 13:18).

다음 구절을 본다면 지금 왕은 예언에 대한 믿음을 시험받고 있다. 이전 구절에서 엘리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전쟁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이제 선지자는 땅을 치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없는 명령이다. 왕의 행동에 따라서 그 결과가 이루어지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신뢰를 보여야 하는 시험이다.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왕의 믿음 있는 행동이 필요했다. 그러나 요아스는 하나님의 명령을 완벽하게 성취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왕하 13:19).

엘리사의 분노는 하나님의 분노이다. 전쟁의 승리를 약속했고 그저 선지자의 명령에 따라서 힘 있게 믿음으로 땅을 치면 되는 일이지만, 왕은 이 쉬운 일마저 실패했다.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영적인 분노를 일으켰다. 엘리사의 분노는 가장 쉬운 일마저 실패하는 왕의 불성실함에 대한 분노였으며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으로 생겨난 분노이다. 왕의 실패로 이스라엘은 원수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어찌하여 대여섯 번 치지 않았소?" 성경의 깊은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땅을 치는 횟수가 중요한가? 맞는 말이다. 땅을 치는 방법이나 횟수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원수를 심판하기로 작정했다면 이러한 외적인 행동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땅을 치는 횟수가 아니라 요아스 왕의 믿음 없는 행동이다. 만약 왕이 아람을 물리칠 것을 약속한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함을 믿는다면 또한 영혼 안에 기적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면 그는 땅을 세 번만 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오랜 시간 엘리사의 기적을 보아 왔다. 그러면 선지자가 승리를 예언하고 승리를 위한 믿음의 순종을 요구했을 때, 왕은 자원하여 성실함으로 명령을 따라야 했을 것이다. 즉 요아스의 실패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만일 요아스가 굳게 믿고 땅을 여러 번 쳤다면 이스라엘의 미래는 달라졌을 것이다. 작은 차이가 큰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타락한 세대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향해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간다.

이런 사람은 아주 작은 것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주 작은 믿음과 부요함, 응답과 기적, 지식과 성령의 열매. 보잘 것 없는 확신을 가지고 그것에만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열정이 있는 사람은 이것에 만족하지도 않으며 이렇게 작은 믿음과 불순종에 대하여 거룩한 분노를 일으킨다. 이제 엘리사는 왕의 불순종을 보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분노하며 생을 마감한다.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왕하 13:20-21).

엘리사는 죽었고 땅에 묻히게 되었다. 그러나 더욱 슬픈 일은 그가 죽고 땅에 묻히는 순간에 이스라엘의 적들이 쳐들어 왔다. 이것은 하나님을 버린 민족이 당해야 하는 필연적인 고통과 슬픔이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군대와 마병의 역할을 했던 선지자를 위해 슬퍼할 시간도 없이 이들은 엘리사의 무덤에 시체를 던졌다. 여기서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다.✌️ 엘리야는 불 병거를 태워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엘리사는 죽은 시체를 살림으로 미래의 부활에 대한 기적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더욱 뚜렷하게 가진다. 하나님의 사람은 마지막 때에 분명하게 부활한다는 소망이다. 선지자의 몸에 닿았던 시체는 살아났는데 예수님으로부터 부활을 약속 받은 우리는 당연히 부활하게 될 것이다. 부활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큰소리로 아멘♥

이 모든 영광은 우리의 미워진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과부의 빈 그릇이 있을 때, 기름과 기적이 채워진 것처럼, 우리의 영혼이 비워질 때 하나님의 기적이 채워질 것이다.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세상에서 무엇을 얻고자 할수록 절망과 좌절, 두려움과 외로움이 밀려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우리의 비어진 마음을 드린다면, 하나님은 이곳에 영원한 생명과 소망, 은혜와 기쁨을 채울 것이다. 아멘 아멘!

Arthur W. Pink 엘리사의 기적 '비움'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