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David190] 유죄 판결(사무엘하 12장)
"다윗은 우리 모두가 배우는 교훈을 배웠다 - 우리가 성결하면 할수록 죄를 지은 후에 더 빨리 그리고 더 분명하게 배우는 교훈을, 그 교훈이란 우리는 죄를 통해서는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며, 설령 그것을 얻을지라도, 그것과 더불어 그것을 망쳐놓는 무언가를 함께 얻게 되므로 결국 모든 죄는 큰 실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유혹을 제공하는 음료, 즉 사람을 흥분시키고 취하게 하는 음료에는 구역질을 일으키는 약이 첨가되어 있다. 그리고 비록 처음에는 그 냄새가 죄의 달콤한 맛에 의해 숨겨져 있을지라도, 그것의 역겨움은 천천히 계속되고 그 달큼한 맛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우리의 입천장에 달라붙여 있다"(Alexander Madaren).😥
이런 사실은 시편 51편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거기에서 그는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소서"(12절)라고 외친다. 그에게서 영적 위로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15절).
그의 안에 있는 성령께서 근심하셨기에 그의 수금(竪琴) 위에는 먼지만 뽀얗게 쌓여 갔다.
어찌 상황이 달리 될 수 있었겠는가? 다윗이 하나님의 강력한 손길 아래에 무릎을 꿇고, 그분에게서 참된 회개의 영을 구하고, 그분에게 자신의 큰 죄를 낱낱이 고백하지 않는 한, 그에게는 더 이상 평안이나 하나님과의 복된 교제나 은혜 안에서의 성장이 있을 수 없었다.🥺
오, 사랑하는이여, 나는 당신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하나님과 빨리 회계(會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당신의 마음에 죄책을 쌓아두지 말라. 매일 밤마다 그분 앞에 당신이 그날 지은 죄를 펼쳐놓고 그분이 그것들을 깨끗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라.
만약 당신이 어떤 큰 죄를 그것의 심각성이 요구하는 것만큼 회개(悔改)하지 않은 채 마음에 쌓아둘 경우, 그것은 당신의 내면의 부패를 심화시킬 것이다. 죄를 무시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든다. 이 구절에서 시편 기자가 탄식하는 것은 어리석게도 자신이 상처를 치유하기에 적절한 시점을 놓쳤다는 사실이었다.
나단을 보내심
사무엘하 11장 마지막 절에서 우리는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27절)라는 말씀을 읽는다. 이 구절에 대해 매튜 헨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적군을 보내 그의 영토를 침략하게 하시거나, 다른 누군가를 보내 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시거나, 그에게 사망 선고를 내리실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분은 그에게 선지자를 보내셨다."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삼하 12:1).
여기에서 우리는 넘치도록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발견할 수 있다. 율법주의적이고 자기 의로 가득 찬 자들은 하나님의 이런 "풍성하심"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라며 투덜거린다.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은 그 정도로 영적인 일들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그런 일은 어리석은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방황했으나, 그분은 그를 잊지 않으셨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4).💕
오, 하나님은 그분의 어린 양을 얼마나 부드럽게 지켜보시는가! 양들이 그분을 떠나 방황할 때, 그분은 얼마나 신실하게 그 양들을 추적해 되찾아오시는가! 그분은 얼마나 놀라운 선하심으로 그들의 타락을 치유하시고, 얼마나 계속해서 그들을 값없이 사랑하시는가!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삼하 12:1).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이 선지자를 찾아간 것이 아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그에게 선지자의 조언이 지금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없었음에도,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상황은 늘 그랬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찾으시기 전에는 결코 그분을 찾지 않는다. 미디안 광야에서 도망자 생활을 하던 모세가 그랬고, 이세벨을 피해 도망쳤던 엘리야가 그랬고,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그랬다..
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녹여야 마땅하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비록 그분이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실지라도, 그분은 또한 즉시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 라고 덧붙이신다(시 89:32-34).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다윗은 그를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던"(삼하 23:5) 영원한 언약의 유익을 얻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아마도 이때는 앞 장 첫머리에 기록된 사건이 벌어진 후 약 1년쯤 지나간 시점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간음을 통해 잉태된 아기가 이미 태어나 있었기 때문이다(삼하 12:14). 이에 대해 매튜 헨리가 다음과 같이 옳게 지적한 바 있다.
"하나님은, 비록 자기 백성들이 죄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실지라도, 그 백성들이 계속해서 그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하락하시지 않는다"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자비하심"을 드러내신다. 그분의 거룩하심은 그분이 죄를 미워하시는 것과 죄를 지은 자로 하여금 그 죄를 참회하며 고백하게 하시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그분의 의로우심은 그분이 죄를 징계하시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그분의 자비하심은 그분이 타락한 자들을 이끌어 죄를 포기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용서를 허락하시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이것은 그분의 다양한 속성들을 얼마나 놀랍고 복되게 드러내는가!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사 57:17-18).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이 선지자의 임무는 부러움을 살 만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의 임무는 죄를 지은 왕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다윗은 회개에 대한 아무런 징표도 보여 주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신의 엇나가는 자녀를 팽개치지 않으셨으나, 그의 안타까운 죄를 묵인하려 하시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야 했다. 하나님의 진노는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했고, 죄인은 비난을 당하고 책임을 져야 했다. 다윗은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 자신을 정죄해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와 자비의 얼마나 놀라운 결합인가!(이런 결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가능해졌다!).💕
하나님은 그분의 의로우심 때문에 다윗을 그의 죄에 합당한 방식으로 다루셔야 했다. 또한 하나님은 그분의 자비하심 때문에 그분의 방황하는 양을 되찾아오기 위해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야 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다"(시 85:10).
나단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임무 앞에서 움츠러들만 했다. 자신의 주군을 질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님께서 그분의 종들에게 맡기시는 과업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종종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해도 그 소식을 듣는 자들이 불쾌하게 여길 것이 분명한 메시지를 들고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내용을 완화하려는 유혹, 즉 그 메시지의 날카로운 부분을 보다 잘 수용될만한 것으로 대체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간 그것을 잘라내려는 유혹은 실제적일뿐 아니라 강력하기도 하다.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복음 사역자가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만약 사도 바울이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라고 말하며 기도를 요청할 필요가 있었다면,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형제와 자매들의 간구의 지원이 얼마나 더 많이 필요하겠는가!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사방에서 "우리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하라!"는 외침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