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anings in Joshua 392 마지막회]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한 내용에 대해 갖가지 추측들이 있어왔다. 어떤 이들은 그가 모세가 이미 마련해 놓은 모세오경에다 여호수아서를 덧붙여서, 여호수아서가 모세오경과 구약의 역사서들을 연결 짓는 필수적인 고리가 되도록 했다고 추정한다.
최소한 어떤 점에서 여호수아서는 모세오경을 보충해 준다.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건지실 때에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음을 여실히 보여 주니 말이다.
여호수아서의 이 책은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 신적인 보증을 받았다. 히브리서에는 여호수아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있고(히 4:8), 그의 책에 기록된 역사도 언급하고 있다(히 11:30-31).
여호수아를 이 책의 저자로 보는 것이 논리적인 것 같다. 많은 군사 지도자들과 많은 통치자들이 미래 세대들을 위해 그들이 지휘한 사건들과 전투의 상세한 내용들을 스케치하곤 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이 마지막 장에서 언급된 그 일 후에 여호수아서 전체를 기록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모든 세세한 내용을 취합하고, 자료를 조직화하고 구성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서를 기록하는 일은 어쩌면 세겜에서 시작되고 여호수아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완결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역사서야말로 여호와와 그분의 사랑하시는 백성을 위해 그가 행한 마지막 봉사였을 수도 있다.♥
그의 성품과 봉사로 인해서 하나님의 종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 라는 특별한 칭호를 얻었다(시 90편의 표제). 여호수아 역시 비슷하게 "여호와의 종"(수 24:29; 삿 2:8)이라는 칭호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 놀라운 두 사람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다. 사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삶의 중심이요, 또한 경계였다. 모든 일상적인 경험의 영역을 여호와께서 통제하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하겠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두 문단은 여호수아 자신이 기록한 것이 분명 아니었다. 여호수아의 죽음과 장례의 기사를 누가 작성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내용이 반드시 필수적인 결말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여호수아는 그의 전임자 모세보다 10년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러나 모세의 경우에는 그가 죽을 당시까지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 대해서는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수 23:1)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이 모세의 경우처럼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이적적으로 건강하게 보존되든지, 아니면 여호수아의 경우처럼 자연스럽게 늙어가게 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지혜와 권능에 속한 일이다.👏
우리로서는 야고보의 말씀을 본받아 말하기를 배우면 좋겠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막 4:15).
이스라엘 전체가 모여 그들의 위대한 통치자를 기리며 장사를 지낸 그날은 그들에게 정말 슬픈 날이었다. 그들은 과거에 그가 요구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에게 주었던 성읍 딤낫 세라(수 19:50)에 모였다.
우리는 여호수아가 평생토록 끼친 영향을 주목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은혜로운 영향력이 그 세대에게 남아 있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아멘! 아멘!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시 112:6).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존귀를 받았으며, 또한 그가 가르쳤고 그가 보인 모범을 친히 본 그 백성이 여호와의 길로 행했으리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과연 모두가 이처럼 올바른 자세로 행하고 있는가? 오늘날 성도의 회중에도 지도자들이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현재는 물론 과거의 지도자들을 기억할 것을 권고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7,17).
여기서 두 가지 다른 매장이 언급된다.
첫째, 요셉의 매장이요,
둘째, 엘르아살의 매장이다.
요셉은 애굽에서 죽었으나, 맹세에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이 그의 뼈를 애굽에서부터 지니고 나왔다. 요셉은 그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영구한 안식을 얻기까지는 스스로 영구한 무덤에 있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그의 아버지 야곱이 하란으로부터 돌아온 후 세겜의 아버지에게서 은 일백 개를 값으로 주고 사서 단을 세운 곳(창 33:19-20)에 묻혔다(수 24:32).
많은 이들은 요셉의 뼈들을 묻은 일은 사실, 이 장의 사건들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아마도 8:30-35에 언급된 언약 갱신의 시기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요셉의 뼈들은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처음 그 땅에 들어와 처음 단을 세웠고, 또한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신 곳(세겜 땅 마므레) 가까이에 묻혔다.
이 장에 언급되는 또 다른 매장은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매장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 아론이 죽은 후 그의 직분을 계승하여 가나안 정복 기간 동안 여호수아를 긴밀하게 보필하며 이스라엘 지파들을 관장했다.
사실 그는 여호수아의 임직식을 집례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그는 여호수아를 도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땅을 분배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의 죽은 시점에 대해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aephus)는 그가 여호수아가 죽은 그 어간에 죽었다고 말한다.
이 세 사람의 훌륭한 지도자들의 매장 기사는 여호수아서를 마감하는 것으로 매우 적절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해당 세대를 섬긴 후 잠들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여호와가 구원이시다" 라는 뜻이며, 요셉은 "여호와가 도우시리라" 요, 엘르아살은 "하나님이 도움이시라" 는 뜻이다. 역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환경도 사람도 시대도 변한다. 이처럼 모든 변하는 것에 둘러싸여 있는 처지에서, 절대로 변치 않으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 3:6)라는 그 분 자신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는 신약의 말씀을 듣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른다. 아멘 아멘!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