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엘리사의 생애 (Gleanings From Elisha)

[비움 38] 엘리사의 기적이야기

En Hakkore 2025. 1. 20. 22:15

15. 기적, 죄를 심판한다(하나님의 심판, 문둥병이 생기다)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왕하 5:22-27).

나아만의 기적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첫째,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나아만의 문둥병을 치료하셨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가 이제는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임한다는 미래적인 소망을 나타낸다.👍

셋째, 나아만의 문둥병을 치료하는 은혜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극적인 은혜를 나타낸다.👍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은 왜 요단강인가 하는 질문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요단강이 아니라 문둥병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이다. 문둥병은 죄를 상징하며 인간에게 선언되어진 최고의 저주이다. 문둥병의 결말이 죽음이듯이 죄의 결말 또한 영원한 죽음이다.

죄가 오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반항하고 조롱하기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의 저주이며 이 저주는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는 것이다. 요단강이 상징하는 것은 사망과 생명이다.

예수께서 오기 전에 세례요한은 회개를 외치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이것은 죄인이 물속에 들어갈 때 그는 죄와 함께 죽은 것이며 물에서 나올 때 새로운 삶을 얻는 것이다.💚

또한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죽은 것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그리고 부활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와 동일한 부활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심판에서 이제는 영원한 생명의 영광으로 돌아서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나는 사람은 새로운 소망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산다."

이제 살펴보고자 하는 기적은 나아만에게 일어난 것과는 완벽하게 다른 기적이다. 나아만은 고침을 받았지만 이 사람은 심판과 저주를 맞이해야 했다. 여기서 두 사람이 대조적으로 등장한다.

이전의 주인공은 나아만이었지만 지금은 선지자의 종 게하시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문둥병으로부터 구원을 원했지만 게하시는 실제적인 재물을 원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지만 게하시는 심판을 받아야 했다.

나아만은 신실한 마음으로 드리기 원했지만 게하시는 악한 욕심을 가지고 탐욕을 채우고자 했다. 나아만의 문둥병은 고쳐졌지만 게하시는 죽음의 질병을 얻게 되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을 벗어났지만 다른 사람은 심판을 받아야 했고 영원한 저주와 심판 가운데서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비극적인 기적의 주인공은 게하시다. 그는 엘리사의 종으로 어디를 가든지 문제를 일으켰다. 첫 번째 수넴 여인이 비통해 하며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왔을 때 게하시는 그 여자를 쫓아내려고 했다.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왕하 4:27).

그러나 선지자는 "그대로 두어라, 여자가 큰 슬픔에 빠져 있다. 여호와께서는 이 일을 나에게 숨기시도 아무 말씀도 해 주지 않으셨다." 라고 말하였다.

두 번째 게하시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엘리사 선지자는 먼저 달려가서 자신의 지팡이를 수넴 여인의 죽은 아이의 얼굴 위에 놓으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지자가 와서야 그 여인의 아이가 살아날 수 있었다.

세번째 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 길갈에 심한 가뭄이 들고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었다. 그때 한 사람이 보리빵 이십 개와 햇곡식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게하시는 이것으로 사람들을 다 먹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왕하 4:43).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의 선지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하시는 언제나 믿음 없이 행동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능력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먹고도 남았다.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왕하 4:43,44).

비록 게하시는 선지자의 종이었지만 이기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 게하시라는 이름의 뜻이 말해 주듯이 그는 '부정한 자' 이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왕하 5:20).

Arthur W. Pink 엘리사의 기적 '비움' p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