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anings in Joshua 351] 도피성(수 18장)
넷째, 도피성으로 향하는 길이 명확히 표시되었다.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신 19:3).
유대인 저술가들에 의하면, 매년 하루를 지정하여 사람들을 보내어 도피성으로 향하는 길들을 보수하고, 길가의 거치는 돌들을 모두 제거하고, 중간 중간에 세워놓은 표지판들을 보수하고 미클락(즉, 도피)이라는 이름이 뚜렷하게 보이게 해놓도록 하는 법이 이스라엘에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었든 아니었든, 하나님이 복음에서 구원의 길이 완전하고도 선명히 보이도록 해 놓으셔서, "우매한 행인이라도 잘못 가지 않도록(사 35:8, 개역개정은 "우매한 행인는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로 번역함. 역주)" 하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섯째, 도피성은 들어가기가 쉬웠다.
도피성은 접근이 용이한 곳의 위치해 있어서, 사람이 도피성으로 피할 일이 생기면 곧바로 그리로 향할 수 있었다. 그 성들이 접근이 어려운 먼 한쪽 모퉁이가 아니라 "땅 가운데에" 위치했다(신 19:2, 3). 가나안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한 구역마다 도피성 하나를 지정하여, 어디서든 하루만에 거기에 닿을 수 있도록 했다.
하나님의 극한 긍휼을 보여주는 가슴 뭉클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살인자의 도피가 용이하도록 모든 것을 배려한 것이다. 이에 대한 적용은 너무도 분명하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중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내 공의가 가깝다"(사 51:5)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길은 아주 단거리이다. 단순히 자기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든 것으로 붙잡기만 하면 된다.
여섯째, 도피성은 오로지 살인자만 피의 보수자로부터 보호했다.
고의로 살인을 저지른 자는 제외되었는데, 이는 고의로 죄와 허물 중에 행하면서 죄인인 체하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고의로 죄를 짓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그분의 법을 짓밟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이 자비를 가로막는 것이다.
죄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거룩하신 그리스도 안에 피난처가 없고, 오로지 죄를 버리고 그에게 피하는 자들에게만 "풍성한 구속" 이 있다. 회개하고 믿는 죄인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안전하다.
주 예수께서 그를 대신하여 그 저주와 진노를 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마귀의 격렬한 공작으로부터도 안전하며, 죄책에 젖어 양심의 참소로부터도 구원받는다.
일곱째, 그러나 그 성에 피하는 자는 반드시 거기에 남아 있어야 했다.
살인자가 어리석게도 그 경계를 벗어나면, 어느 때나 피의 보수자가 그를 죽일 권리가 있었다(민 35:26, 27). 그 성 안으로 도피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듯이, 그 속에 계속 남아 있는 것도 그의 의무였다.
이는 신자가 회심 뿐만 아니라 그 이후 평생토록 그리스도를 좇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말씀해 준다. 성경은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물론, 지속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일에 대해서도 그만큼 강조하고 있다(요 8:31; 골 1:23; 히 2:6, 14; 요일 2:28).
여덟째, 두피성은 유대인에게는 물론 이방인들에게도 열려 있었다(민 35:15).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늣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 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진정 감사해야 옳을 것이다.
아홉째,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인 구원이 확정되었다(수 20:6).
일부 주석가들은 이에 대해 스스로 난제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신자의 구속의 원인이 이 여러 가지 면을 지닌 모형 속에서 그림자로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다. 이스라엘이 대제사장이 살아 있고 살인자가 그 성내에 거주하는 모든 날 동안, 그에게 그 어떠한 정죄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시니",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토록 안전한 것이다. 그리고 살인자는 아론 혹은 그의 후계자의 죽음에 즈음하여 자유함을 얻었다.
이처럼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었다. 이처럼 도피성(안전)과 대제사장의 죽음(속죄)이라는 이중의 모형이 - 레위기 16:7, 8의 두 염소가 그랬던 것처럼- 그 두 가지 면을 제시하는 데에 필수적이었다.
여기에서 여기에는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내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 과거의 성도도 구원받았으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야 비로소 아들의 충만한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갈 4:1-7).
열째, 도피성들의 이름(수 20:7, 8)은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바를 뜻하는 것들이었다.
게뎃스는 "거룩"을 뜻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자에게 의와 거룩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이것이 맨 처음 언급되는 것이 얼마나 깊은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 구속자 그리스도 안에 그 거룩의 처소가 있다.
세겜은 "어깨" 라는 뜻으로, 힘(사 9:7)과 안전(눅 15:5)의 장소이다.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신자는 안전을 누린다. 헤브론은 "교제"를 뜻하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의 백성들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과의 교제 속에 들어간다.
베셀은 "산성"을 뜻한다. 그러므로 "나는 여호와를 향해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 91:2). 라못은 "높음" 혹은 "높이 오름" 을 뜻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세상의 위로 올려지고 하늘의 처소에 앉게 된다(엡 2:6). 골란은 "환희" 혹은 "즐거움" 을 뜻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1).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755
🍇 요한복음 8장 31절.
"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 골로새서 1장 23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 히브리서 2장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6)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14)
🍇 요한일서 2장 28절.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