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344] 도피성(수 18장)

En Hakkore 2024. 11. 28. 21:58

이렇게 해서 고의적인 살인과 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서로 명확하게 구분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사람이 계획적으로든 아니면 갑작스러운 감정에 의해서든 동료를 쳐서 그로 인해 상대방이 목숨을 잃었을 경우, 그 행위는 살인으로 간주되어 사형이 부과되었다.

그러나 전혀 고의가 아닌 상태에서 우연히 상대방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해도, 그로 인해 사형을 당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로 도피할 수가 있었고, 거기로 피하면 그에게 복수하고자 뒤를 쫓는 자에게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위의 본문이 십계명을 기록하는 본문의 바로 다음 장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매우 인상적이다. 옛 언약에 속한 내용과 새 언약에 속한 내용을 서로 몹시 차별하는 식으로 대조시키는 그런 취미를 가진 분들은 이런 은혜로운 배려가 세대주의자들이 흔히 "가차없이 금지하는 가혹한 율법적 통치" 라고 부르는 바로 그 경륜 아래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것이라는 점을 주의 깊게 새겨야 한다.

편파성이 없이 공정하게 말씀을 대하는 이들은 다 알겠지만, 이것은 결코, 그런 유의 것이 아니다. 모든 시대마다 하나님은 긍휼로 그분의 정의를 부드럽게 하셨고, 의를 통해 그분의 은혜가 왕 노릇하도록 하셨다.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은 선언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간과에서는 안 될 것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 103:13).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시 119:156).

그분의 진노를 발하시는 것을 가리켜 "비상한 일"(사 28:21)로 말씀한다.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심으로..."(느 9:17).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며"(미 7:18), 도피성들이 바로 그 사실을 가장 명확히 입증했다.

출애굽기 21:13-14절을 지나가기 전에, 13절의 말씀을 주목해야겠다.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고로 사람을 죽인 것이면" 이라고 하지 않고,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이라고 말씀한다.

모든 사건에 하나님이 관여하신다는 성경 전체의 한 결 같은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하여, 여기 언급되는 그런 재난을 "우연" 이나 "재수 없음"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에는 우연한 일이란 없으므로), 하나님이 하신 일로 - 즉, 주께서 그가 주셨던 목숨을 그런 식으로 취해가기를 기뻐하셨다는 뜻으로 -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거니와"(시 68:20).

모든 문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명령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열리지 않으며, 그가 명령하시면 아무도 거역할 수가 없다.

"나의 앞날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전 3:2] 주의 손[나의 손이 아니라]에 있사오니"(시 31:15).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욥 14:5).

하나님은 죽는 시각을 정해 놓으셨을뿐 아니라, 죽음의 방식도 정해 놓으셨다.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요 10:31), 허사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도록 하나님이 정해놓으셨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 죽음이 오든 간에, 죽이시고 "스올에 내리게"(삼상 2:6) 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738